설영 薛瑩
인물 소개
설영은 자가 도언이며 오나라 신하 설종의 아들이다. 손휴 때 산기중상시가 되었고, 손호 때 선조상서·소부·좌국사를 거쳐 광록훈에 이르렀으며, 위요 등과 함께 『오서』를 지었다. 정사 오지 권8 §51 · 57 · 59–60
손호의 조정에서 두 번 광주로 보내졌다가 불려 돌아왔다. 천기 4년(280) 진나라 군대가 쳐들어오자 손호가 바친 항복 글을 지었고, 낙양에 가서 산기상시가 되었다가 태강 3년(282)에 죽었다. 정사 오지 권8 §56 · 59 · 61
진수는 평에서 설영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선대의 기풍이 있었으나, 포학하고 가혹한 조정에서 여러 번 높은 반열에 오른 것은 군자라면 위태롭게 여겼을 일이라고 적었다. 연의에는 120회 가운데 제120회에만 광록훈으로 나오며, 회목에 이름이 든 회는 없다. 진나라 군사가 성에 들어오자 손호에게 안락공 유선을 본받으라고 아뢴다. 정사 오지 권8 §63연의 제120회 §55
정사 기록
설영은 설종의 아들로, 위남장군을 지낸 설후의 아우이며 자는 도언이다. 처음에 비부중서랑이 되었다. 위요전에 따르면 손량이 즉위하고 제갈각이 정사를 보좌할 때 위요가 태사령이 되어 『오서』를 지었는데, 화핵·설영 등이 모두 함께 참여했다. 정사 오지 권8 §49 · 51정사 오지 권20 §39
손휴가 즉위하자 산기중상시가 되었다. 왕번전에 따르면 이때 왕번·하소·우사와 함께 산기중상시가 되어 모두 부마도위를 더해 받았고, 당시의 여론은 그들을 청렴하다고 여겼다. 몇 해 뒤 병으로 관직을 떠났다. 손호 초년에 좌집법이 되었다가 선조상서로 옮겼고, 태자가 세워지자 소부를 겸했다. 건형 원년(269) 병이 든 육개는 손호에게 남긴 말에서 설영을 누현·하소 등과 함께 사직의 기둥이요 나라의 훌륭한 보필로 들었다. 정사 오지 권8 §51정사 오지 권20 §2정사 오지 권16 §28
건형 3년(271) 손호가 설영의 아버지 설종이 남긴 글을 돌이켜 감탄하며 설영에게 이어서 짓게 하자, 설영은 시를 바쳤다. 시에서 그는 아버지가 난리를 피해 동남으로 와 대황(손권)의 부름으로 합포태수를 거쳐 중추의 자리에 올랐고, 문황(손화)이 동궁이 되자 소부가 되었음을 기렸다. 이어 형 설후가 남쪽 정벌의 명을 받고, 자신은 인물을 가리는 요직과 동궁의 스승을 맡았으나 재주가 선친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고, 죽어서는 풀을 맺어 갚고 살아서는 몸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정사 오지 권8 §51–55
이해에 하정(何定)이 성계를 뚫어 장강과 회수를 잇자고 건의하자, 손호는 설영에게 만 명을 감독해 가게 했다. 그러나 반석이 많아 공사를 하기 어려워 그만두고 돌아왔고, 무창좌부독으로 나갔다. 뒤에 하정이 주살되자 손호는 성계의 일을 거슬러 따져 설영을 옥에 가두었다가 광주로 유배했다. 육항전에 따르면 육항은 무창좌부독 설영이 소환되어 옥에 갇혔다는 말을 듣고 상소했다. 그는 설영의 아버지 설종이 선제에게 납언을 올리고 문황을 보필했으며 설영도 가업을 이은 뒤 안으로 이름과 행실을 가다듬었으니, 지금 걸린 죄는 용서할 만하다며 사면을 빌었다. 정사 오지 권8 §56정사 오지 권13 §77–79
우국사 화핵은 상소하여, 대황제 말년에 정부와 항준이 처음 『오서』를 지었으나 기록할 만하지 못했고, 소제 때 위요·주소·설영·양광과 자신 다섯 사람이 지어 본말을 갖추었다고 했다. 그러나 주소와 양광은 먼저 죽고 위요는 죄를 지었으며 설영은 나가서 장수가 되었다가 허물로 유배되어 책이 방치되었다고 했다. 화핵은 설영이 학문을 널리 섭렵하고 문장이 더욱 오묘해 동료 가운데 으뜸이며, 기술하는 재주가 설영만 한 자가 드물다며 나라를 위해 그를 아까워했다. 정사 오지 권8 §56–58
손호는 마침내 설영을 불러 돌아오게 하여 좌국사로 삼았다. 얼마 뒤 같은 군 사람인 선조상서 무의가 소인배들의 미움을 받아 형양태수로 좌천되고 다시 문책을 당했는데, 사죄하는 길에 설영을 찾아갔다가 빈객을 많이 거느리고 설영의 처소에 모였다는 고발을 받았다. 무의는 계양으로 유배되고 설영은 광주로 돌려보내졌으나, 이르기 전에 다시 불려 와 복직했다. 이때 법령과 정사가 많이 어긋나고 조치가 번거롭고 가혹했는데, 설영은 매번 편의책을 올려 형벌을 너그럽게 하고 부역을 줄여 백성을 구제하자고 진언했고, 간혹 시행되었다. 광록훈으로 옮겼다. 정사 오지 권8 §59–60
천기 4년(280) 진나라 군대가 손호를 치자, 손호는 광록훈 설영과 중서령 호충 등의 계책을 써서 왕준·사마주·왕혼에게 사자를 나누어 보내 글을 바치고 항복을 청했는데, 그 글은 설영이 지은 것이었다. 설영은 낙양에 이르자 특별히 먼저 서용되어 산기상시가 되었고, 묻는 말에 대답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모두 조리가 있었다. 태강 3년(282)에 죽었다. 책 여덟 편을 지어 『신의』라 이름했다. 정사 오지 권8 §61정사 오지 권3 §83
진수는 왕번·누현·하소·위요의 전기를 평하면서 설영의 말을 먼저 인용했다. 설영은 왕번이 기량이 넉넉하고 남달랐으며, 누현은 청백하고 절조가 있었고, 하소는 뜻을 가다듬어 고결했으며, 위요는 학문에 독실하고 옛것을 좋아해 기록하고 서술하는 재능이 있었다고 평했다. 정사 오지 권20 §84
진수는 평에서 설종이 학식과 간언으로 오의 훌륭한 신하가 되었다고 하고, 설영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밟은 것은 참으로 선대의 기풍이 있었으나 포학하고 가혹한 조정에서 여러 번 높은 반열에 오른 것은 군자라면 위태롭게 여겼을 일이라고 적었다. 정사 오지 권8 §63
연의 묘사
연의 제120회에서 진나라 장수 왕준이 석두성에 들어오자 손호는 스스로 목을 찌르려 한다. 중서령 호충과 광록훈 설영이 '폐하께서는 어찌 안락공 유선을 본받지 않으십니까'라고 아뢰고, 손호는 그 말을 따라 관을 수레에 싣고 스스로 몸을 묶은 채 문무 관원들을 거느리고 왕준의 군영 앞으로 가서 항복한다. 왕준은 그 결박을 풀고 관을 불사른 뒤 왕의 예로 대우한다. 연의에서 설영이 나오는 곳은 이 한 장면뿐이다. 연의 제120회 §54–55
연의와 다른 점
항복을 권한 말: 연의 제120회에서 설영은 호충과 함께 손호에게 안락공 유선을 본받으라고 아뢴다. 정사에서 손호는 광록훈 설영과 중서령 호충 등의 계책을 써서 왕준·사마주·왕혼에게 사자를 나누어 보내 글을 바쳤다. 유선을 본받으라는 말은 진수 본문에 없다. 연의 제120회 §55정사 오지 권3 §83정사 오지 권8 §61
항복 글: 정사 설영전은 손호가 사마주·왕혼·왕준에게 바친 항복 글을 설영이 지었다고 적었다. 연의 제120회는 이 글을 쓰지 않고, 손호가 몸을 묶고 관을 수레에 실은 채 왕준의 군영으로 가는 장면만 그린다. 정사 오지 권8 §61연의 제120회 §55
『오서』: 정사에서 설영은 위요·주소·양광·화핵과 함께 『오서』를 지었고, 화핵은 기술하는 재주가 설영만 한 이가 드물다고 했다. 연의는 그를 제120회에서 광록훈으로만 내세운다. 정사 오지 권8 §57–58정사 오지 권20 §39연의 제120회 §55
유배와 복직: 정사에서 설영은 성계 공사 일로 옥에 갇혀 광주로 유배되었다가 화핵의 상소로 돌아왔고, 무의의 일로 다시 광주로 보내지다 도중에 불려 왔다. 연의에는 이 일이 없다. 정사 오지 권8 §56 · 59–60연의 제120회 §55
항복 뒤: 연의는 제120회의 항복 장면 뒤로 설영을 쓰지 않는다. 정사에서 설영은 낙양에서 산기상시가 되어 묻는 말에 조리 있게 답했고, 태강 3년(282)에 죽었으며 『신의』 여덟 편을 지었다. 연의 제120회 §55정사 오지 권8 §61
3KDEX 집필(검수 전) — 문단 끝의 표지는 근거가 된 정사 권 · 연의 회의 그 절로 이어진다.
능력치
정사(진수 『삼국지』 본문)의 점수가 기준입니다. 연의가 같은 인물을 어떻게 다시 그렸는지 항목마다 견주고, 두 원전의 근거로 차이를 설명합니다.
- 통솔4031−9
- 무력3131±0
- 지력4842−6
- 정치6040−20
- 매력4535−10
- 덕6240−22
- 처세4055+15
- 문예8440−44
- 언변5545−10
- 용인5835−23
연의가 만든 능력치 — 정사와 다른 곳 차이 10점 이상
정왕번·누현·하소·위요의 재능과 행실을 짚어 평함오지 권20 §84
연직접 기록 없음 — 추정제120회 §55
정안으로 이름과 행실을 가다듬어 선대 기풍이 있다고 함오지 권13 §79오지 권8 §63
연직접 기록 없음 — 추정제120회 §55
비슷한 곳 3개 — 근거 보기
정사 연의 추정 직접 기록이 없어 행적으로 매긴 값(근거 등급 C)
3KDEX 채점 — 정사는 진수 『삼국지』 본문, 연의는 『삼국지연의』 120회 본문이 근거다. 근거 표지를 누르면 원문 리딩의 그 절로 간다.
연의 등장 회차 (1회)
등장미등장 회차 목록 →
소속 이력
- 오 · 정사 · 정사 권53 「皓遂召瑩還,為左國史」 · 검수 v38
가족
| 부모 | 설종 정사 |
|---|
Wikidata 역사·연의 인물 항목 기준(정의서 16). 추정 배지가 없는 관계는 정사 원문에서도 확인한 것.
관련 사건 (1)
- 손호가 항복하니 셋으로 나뉜 천하가 하나로 돌아가다 280년 · 등장(연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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