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접 기록 없음 — 부절을 들고 조조를 위공으로 책봉위지 권1 §121
치려 郗慮
인물 소개
치려는 후한 헌제 때의 어사대부다. 정사에는 따로 전이 없고, 진수 본문에는 두 곳에 이름이 나온다. 건안 18년(213) 5월, 헌제는 어사대부 치려에게 부절을 가지고 가서 책명으로 조조를 위공으로 삼게 했다. 정사 위지 권1 §121
권21 유소의 기록에는 어사대부 치려가 유소를 불렀으나 마침 치려가 면직되었다는 말이 있다. 진수 본문은 그의 자와 출신, 죽음을 적지 않으며, 권1과 권21의 평에도 그의 이름은 없다. 정사 위지 권21 §65 · 99정사 위지 권1 §173
연의에는 제40회에 어사대부로 처음 나와 120회 가운데 2회(제40 · 66회)에 등장하며, 회목에 이름이 오르지는 않는다. 제40회에서는 공융의 탄식을 조조에게 고해 공융이 죽임을 당하게 하고, 제66회에서는 어림장군으로 부절을 가지고 궁에 들어가 복황후의 옥새와 인끈을 거둔다. 연의 제40회 §7–8연의 제66회 §41
정사 기록
무제기에 따르면 건안 13년(208)에 한나라 조정은 삼공의 관직을 폐지하고 승상과 어사대부를 두었고, 그해 여름 6월 조조가 승상이 되었다. 진수 본문은 이때 누가 어사대부가 되었는지는 적지 않는다. 정사 위지 권1 §103
건안 18년(213) 5월 병신일, 헌제는 어사대부 치려에게 부절을 가지고 가서 책명으로 조조를 위공으로 삼게 했다. 책명은 동탁이 처음 나라의 환란을 일으켰을 때부터 조조가 세운 공을 하나하나 들고, 기주의 하동 · 하내 · 위군 등 모두 열 군으로 그를 위공에 봉하며, 승상으로서 기주목을 겸하는 것은 전과 같이 하고 구석을 더한다는 내용이었다. 정사 위지 권1 §121 · 123–126 · 129
책명이 내린 구석은 대로와 융로, 곤면의 옷과 붉은 신, 헌현의 음악과 육일의 춤, 붉은 문, 납폐, 호분의 군사 3백 명, 부와 월, 붉은 활과 검은 활, 거창과 규찬이었다. 또 위국에는 승상 이하 여러 경과 백관을 두되 모두 한나라 초기 제후왕의 제도와 같게 하라고 했다. 정사 위지 권1 §130–132
권21의 유소 기록에 따르면, 광평군 한단현 사람 유소는 건안 연간에 계리로 허에 갔다. 어사대부 치려가 유소를 불렀으나 마침 치려가 면직되어, 유소는 태자사인에 임명되었다가 비서랑으로 옮겼다. 진수 본문은 치려가 면직된 해와 까닭을 적지 않는다. 정사 위지 권21 §63 · 65
진수 본문은 치려의 자와 출신, 죽음을 적지 않는다. 권1의 평은 태조를, 권21의 평은 왕찬 등 문사들을 논할 뿐 치려는 나오지 않는다. 정사 위지 권1 §121 · 173정사 위지 권21 §65 · 99
연의 묘사
연의 제40회에서 조조가 유비 · 유표 · 손권을 정벌하려 하자 태중대부 공융이 간했다가 꾸짖음을 듣고 물러난다. 공융이 승상부를 나와 '지극히 어질지 못한 자가 지극히 어진 이를 치니 어찌 패하지 않겠는가'라고 탄식하자, 어사대부 치려의 식객이 이 말을 듣고 치려에게 알린다. 연의 제40회 §6–7
치려는 늘 공융에게 업신여김을 당해 마음속으로 그를 미워하던 터라, 이 말을 가지고 들어가 조조에게 고한다. 그리고 공융이 평소 번번이 승상을 업신여겼고 예형과 친하게 지내며 서로 '중니가 죽지 않았다', '안회가 다시 태어났다'고 기렸으며, 지난번 예형이 승상을 욕보인 것도 공융이 시킨 것이라고 덧붙인다. 조조는 크게 노해 정위에게 공융을 잡아들이게 하고, 공융의 식솔과 두 아들까지 모두 베어 그 시체를 저잣거리에 내건다. 연의 제40회 §7–8
제66회에서 복완의 편지가 드러나자 조조는 복씨 삼족을 모두 옥에 가두고, 날이 밝자 어림장군 치려에게 부절을 가지고 궁에 들어가 먼저 황후의 옥새와 인끈을 거두게 한다. 치려는 갑병 3백 명을 이끌고 외전의 황제 앞으로 곧장 들어가 '위공의 명을 받들어 황후의 옥새를 거두러 왔다'고 하고, 후궁에 이르러 옥새와 인끈을 맡은 사람을 불러 옥새를 받아 나간다. 연의 제66회 §40–41
상서령 화흠이 이중벽 속에 숨은 복황후를 끌어내 외전에 이르자, 황제는 황후를 끌어안고 운다. 갑사들이 황후를 끌고 가 버리자 황제는 곁에 있던 치려를 보고 '치공! 천하에 어찌 이런 일이 있단 말이오!'라고 하고는 울다가 땅에 쓰러지고, 치려는 좌우에게 황제를 부축해 궁으로 들게 한다. 연의는 이 일을 건안 19년 11월의 일로 적는다. 연의 제66회 §42 · 47–49
연의와 다른 점
공융과의 사이: 연의 제40회는 치려가 늘 공융에게 업신여김을 당해 그를 미워했다고 한다. 진수 본문에서 치려가 나오는 두 곳에는 공융이 나오지 않고, 두 사람의 사이를 적은 대목도 없다. 연의 제40회 §7정사 위지 권1 §121정사 위지 권21 §65
공융의 죽음: 연의 제40회에서는 치려가 식객에게 들은 공융의 탄식을 조조에게 고해 공융이 잡혀 죽는다. 정사 권12 최모서하형포사마전의 공융 기록은 태조가 성품이 시기심이 많아, 노국의 공융 등이 옛 인연을 믿고 공손하지 않았다가 죽임을 당했다고 적을 뿐 치려는 나오지 않는다. 연의 제40회 §7–8정사 위지 권12 §19
관직: 연의에서는 제40회에서 어사대부, 제66회에서 어림장군으로 나온다. 진수 본문은 위공 책명과 유소의 기록 두 곳 모두 그를 어사대부라 적는다. 연의 제40회 §7연의 제66회 §41정사 위지 권1 §121정사 위지 권21 §65
위공 책명: 정사 무제기에서는 건안 18년(213) 헌제가 치려에게 부절을 가지고 가서 조조를 위공으로 책명하게 한다. 연의 제61회에는 동소가 위공의 작위를 받고 구석을 더하라고 권하고 순욱이 반대하는 장면이 있으나, 치려가 책명을 전하는 장면은 없다. 정사 위지 권1 §121연의 제61회 §30–33
복황후의 옥새: 연의 제66회에서는 치려가 부절을 가지고 들어가 황후의 옥새와 인끈을 거두고, 황제가 그를 '치공'이라 부르며 한탄한다. 정사 무제기는 건안 19년(214) 11월 황후 복씨가 예전에 아버지 복완에게 보낸 편지 일로 연좌되어 폐출되어 죽고 형제들도 처형되었다고만 적으며, 치려는 나오지 않는다. 연의 제66회 §41 · 47정사 위지 권1 §136 · 142
3KDEX 집필(검수 전) — 문단 끝의 표지는 근거가 된 정사 권 · 연의 회의 그 절로 이어진다.
능력치
정사(진수 『삼국지』 본문)의 점수가 기준입니다. 연의가 같은 인물을 어떻게 다시 그렸는지 항목마다 견주고, 두 원전의 근거로 차이를 설명합니다.
- 통솔3135+4
- 무력3133+2
- 지력4242±0
- 정치4838−10
- 매력4030−10
- 덕4218−24
- 처세4555+10
- 문예4535−10
- 언변4540−5
- 용인4831−17
연의가 만든 능력치 — 정사와 다른 곳 차이 10점 이상
정어사대부로 유소를 불러 쓰려 함위지 권21 §65
연직접 기록 없음제40회 §7
정직접 기록 없음 — 어사대부 관직으로 추정위지 권1 §121위지 권21 §65
연직접 기록 없음제40회 §7
정직접 기록 없음위지 권21 §65
연직접 기록 없음 — 공융에게 늘 업신여김을 당함제40회 §7
정직접 기록 없음 — 조조의 뜻을 따른 행적으로 추정위지 권1 §121
정직접 기록 없음 — 어사대부로 선비를 부른 행적으로 추정위지 권21 §65
연직접 기록 없음제40회 §7
비슷한 곳 4개 — 근거 보기
정직접 기록 없음위지 권1 §121
연직접 기록 없음 — 갑병 3백을 이끈 행적으로 추정제66회 §41
정직접 기록 없음위지 권1 §121
연직접 기록 없음제66회 §41
정직접 기록 없음 — 어사대부 관직으로 추정위지 권1 §121
연직접 기록 없음제40회 §7
정천자의 사자로 부절을 들고 책명을 전함위지 권1 §121
연직접 기록 없음 — 조조에게 공융을 참소한 말로 추정제40회 §7
정사 연의 추정 직접 기록이 없어 행적으로 매긴 값(근거 등급 C)
3KDEX 채점 — 정사는 진수 『삼국지』 본문, 연의는 『삼국지연의』 120회 본문이 근거다. 근거 표지를 누르면 원문 리딩의 그 절로 간다.
연의 등장 회차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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