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환 曹奐

정사연의 위 자(字) 景明 Cao HuanJingming경명조황曹璜曹奂

프로필
직업정연군주 · 황제소속위
등장정연수록위지
출생정246년 연? 추정출신지패국 초현 추정
사망정303년 연(동일) 추정사망지
사망 원인연자연사 추정
존재실존언급정12회

인물 소개

조환은 자가 경명이며, 조조의 손자이자 연왕 조우의 아들이다. 감로 3년(258)에 안차현 상도향공에 봉해졌고, 처음 이름은 조황이었다. 감로 5년(260) 고귀향공 조모가 죽자 공경들의 의논으로 맞아들여져, 그해 6월 낙양에 들어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정사 위지 권4 §98 · 105 · 111 · 113

그가 자리에 있는 동안 위는 촉을 평정했고, 대장군 사마소는 진공을 거쳐 진왕이 되었다. 사마소가 죽은 뒤 함희 2년 12월(서기 266년 초) 그 아들 사마염에게 선위하고 거처를 금용성으로 옮겼다가, 끝내 업에서 머물러 지냈다. 이때 나이 스물이었다. 정사 위지 권4 §127 · 129 · 148 · 150

정사를 쓴 진수는 평에서 그가 몸을 공손히 하여 남면했을 뿐 재보가 정사를 총괄했으며, 앞의 전례를 따라 선위하고 진의 빈객이 되었다고 적었다. 연의에는 제114회에 사마소가 세운 황제로 처음 나와 120회 가운데 4회에 등장하며, 이름이 회목에 든 회는 없다. 제119회에서 사마염에게 몰려 수선단을 쌓고 제위를 넘긴다. 정사 위지 권4 §153연의 제114회 §23연의 제119회 §38–41

정사 기록

조환은 자가 경명이며, 무제 조조의 손자이자 연왕 조우의 아들이다. 감로 3년(258)에 안차현 상도향공에 봉해졌다. 아버지 조우는 명제와 어려서 함께 지내 남다른 총애를 받았고, 명제의 병이 위독할 때 대장군에 임명되어 뒷일을 부탁받았으나 나흘 만에 굳게 사양해 관직을 면했다. 정사 위지 권4 §113정사 위지 권20 §18–19

감로 5년(260) 5월 고귀향공이 죽자, 사지절 행중호군 중루장군 사마염을 북쪽으로 보내 상도향공 조황을 맞아들여 명제의 뒤를 잇게 했다. 6월 계축일에는 상도향공의 휘자가 피하기 매우 어려우니 조정의 신하들이 널리 의논하여 고치라는 조서가 내렸다. 갑인일 낙양에 들어와 황태후를 뵙고, 그날로 태극전의 앞 전각에서 황제의 자리에 올라 대사면을 내리고 연호를 바꾸었다. 무문세왕공전은 조우의 아들 조환이 들어가 대종을 이었다고 적는다. 정사 위지 권4 §98 · 105 · 111 · 113정사 위지 권20 §19

경원 원년(260) 6월 병진일, 대장군 사마소의 지위를 올려 상국으로 삼고 진공에 봉하며, 두 군을 더 봉해 열 군을 채우고 구석의 예를 더하게 했다. 그 집안 자제 가운데 아직 후가 되지 못한 이는 모두 정후에 봉하고 돈 천만과 비단 만 필을 내리게 했으나, 사마소가 굳이 사양하여 그쳤다. 기미일 옛 한 헌제의 부인 조절이 죽자 황제는 화림원에서 곡하고 헌목황후라는 시호를 추증했으며, 장례의 수레와 복식은 모두 한나라의 옛 전례대로 했다. 정사 위지 권4 §114–115

그해 11월 연왕이 동지를 하례하는 표문을 올리며 신하라 칭했다. 조서는 옛날 왕자에게도 신하로 삼지 않는 이가 있었으니 표문에서 신하라 칭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하고, 대종을 이은 이는 친부모에 대한 예를 낮추지만 곧바로 신하처럼 대하는 것도 정리상 편치 않으니 예전에 따라 마땅함을 다하라고 했다. 유사는 궁중의 조서에는 '황제가 삼가 대왕의 시어께 문안합니다'라 쓰고 제서에는 '연왕에게 제조한다'라 쓰며, 종묘 제사를 돕는 일이 아니면 왕의 이름을 칭하지 못하게 하자고 아뢰었다. 정사 위지 권4 §116–119

경원 2년(261) 8월과 4년(263) 2월에 다시 대장군에게 진공의 작위와 상국의 지위를 명했으나, 그때마다 굳이 사양하여 그쳤다. 4년 10월 갑인일에 또 앞의 조서와 같이 명했고, 이어 계묘일에 황후 변씨를 세웠다. 후비전은 변림의 딸이 진류왕의 황후가 되었다고 적는다. 정사 위지 권4 §121 · 123 · 126정사 위지 권5 §15

경원 4년(263) 5월 조서를 내려, 촉이 믿는 것은 강유뿐인데 그가 소굴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정서장군 등애는 감송과 답중으로, 옹주자사 제갈서는 무도와 고루로 달려가 강유를 사로잡고 동서로 나란히 나아가 파촉을 쓸어 없애게 했다. 또 진서장군 종회에게 낙곡을 거쳐 촉을 치게 했다. 11월 촉의 군주 유선이 등애에게 나아가 항복해 파촉이 모두 평정되었고, 12월 등애를 태위로, 종회를 사도로 삼았다. 정사 위지 권4 §124–127

함희 원년(264) 정월 임술일 함거로 등애를 불러들였고, 갑자일에는 장안으로 행차했다. 이달 종회가 촉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무리에게 토벌되었고, 등애도 죽임을 당했다. 3월 기묘일 진공의 작위를 올려 왕으로 삼고 열 군을 더 봉해 스무 군으로 했으며, 정해일 유선을 안락공에 봉했다. 5월 상국 진왕이 오등작을 회복하자고 아뢰었고, 갑술일에 연호를 바꾸었다. 정사 위지 권4 §128–129

8월 계사일 조서를 내려, 종회가 반란을 꾸밀 때 절개를 굽히지 않고 그의 말을 거부한 하후화·양수(羊琇)·주무와, 종회가 장수와 병사를 모두 죽이려 한다는 말로 무리의 마음을 격동시킨 가보를 표창했다. 하후화와 가보는 향후로, 양수와 주무는 관내후로 작위를 올리고, 가보의 말을 여러 군에 널리 알린 산장 왕기(王起)는 부곡장으로 삼았다. 9월에는 오의 장수 여흥이 교지에서 오의 사자 등구 등을 죽이고 귀순하자 그를 남중대장군으로 삼고 정안현후에 봉했으나, 책명이 이르기 전에 여흥은 부하에게 살해되었다. 정사 위지 권4 §131–133 · 135 · 138

사마염은 이해 8월 경인일 중무군으로서 상국의 일을 보좌하게 되었고, 9월 무오일 무군대장군이 되었으며, 10월 병오일 진의 세자가 되었다. 이해에 둔전관을 폐지해 여러 전농은 태수로, 도위는 영·장으로 삼았다. 정사 위지 권4 §130 · 134 · 144

함희 2년(265) 4월 오가 사자 기척과 홍구를 보내 화친을 청했다. 5월 조서를 내려 손호가 바친 물건을 모두 진왕에게 돌려보내게 했으나 진왕이 굳이 사양해 그쳤다. 또 진왕에게 열두 줄 구슬을 드리운 면류관을 쓰고 천자의 정기를 세우며 금근거를 여섯 필 말로 끌게 하고, 왕비를 왕후로, 세자를 태자로 올렸다. 8월 신묘일 진왕이 죽자 이튿날 태자 사마염이 봉작과 지위를 이어 백규를 총괄했다. 정사 위지 권4 §145–148

12월 임술일, 하늘의 녹이 영영 끝나고 역수가 진에 있게 되었다며 조서를 내려 공경과 사대부에게 의례를 갖추어 남쪽 교외에 단을 설치하게 하고, 사자를 보내 황제의 옥새와 인끈과 책서를 받들어 진의 사왕에게 선위하니 한과 위의 옛 전례와 같았다. 갑자일 사자에게 책서를 받들게 했다. 조환은 거처를 금용성으로 옮겼다가 끝내 업에서 머물러 지냈다. 이때 나이 스물이었다. 진수의 본문은 그 뒤 언제 죽었는지 적지 않았다. 정사 위지 권4 §150

진수는 평에서, 명제가 방계에서 덕 있는 이를 고르지 않고 어린아이를 길러 대업을 물려주어 조상이 주멸되고 제왕이 폐위되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진류왕은 몸을 공손히 하여 남면했을 뿐 재보가 정사를 총괄했으니, 앞의 전례를 따라 읍양하며 선위하고 큰 나라에 봉해져 진의 빈객이 되었으며, 산양공에 견주면 내려진 총애가 더했다고 적었다. 정사 위지 권4 §152–153

연의 묘사

연의 제114회에서 조모가 죽은 그해 6월, 사마소는 상도향공 조황을 황제로 세우고 연호를 경원 원년으로 고친다. 조황은 이름을 조환으로 고치는데, 연의는 그의 자가 경명이며 무제 조조의 손자요 연왕 조우의 아들이라고 적는다. 조환은 사마소를 상국·진공으로 봉하고 돈 10만과 비단 1만 필을 내리며, 문무 관원도 저마다 봉작과 상을 받는다. 이 소식을 들은 강유는 사마소가 조모를 시해하고 조환을 세웠으니 위를 칠 명분이 또 생겼다며 기뻐한다. 연의 제114회 §23

제118회에서 사마소는 등애의 표장을 보고 크게 노해 종회에게 등애를 잡아들이게 하고, 자신은 위주 조환과 함께 어가를 몰아 친히 정벌에 나선다. 제119회에서 조정 대신들이 서천을 거둔 공으로 사마소를 왕으로 높이자는 표를 올리자, 이름만 천자일 뿐 아무것도 스스로 정할 수 없던 조환은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어 사마소를 진왕으로 봉하고, 사마의와 사마사에게 선왕과 경왕의 시호를 올린다. 연의 제118회 §33연의 제119회 §31

사마소가 죽고 사마염이 진왕의 자리를 이은 뒤, 가충과 배수가 조비가 한의 대통을 이은 옛일을 본받으라고 권하자 사마염은 이튿날 칼을 차고 궁 안으로 들어간다. 여러 날 조회를 열지 않고 정신이 멍하던 조환은 허둥지둥 어탑에서 내려와 그를 맞고, 위의 천하는 누구의 힘으로 얻은 것이냐는 물음에 '모두 진왕의 부친과 조부께서 내려 주신 것'이라고 답한다. 문으로는 도를 논하지 못하고 무로는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니 재주와 덕이 있는 사람에게 넘기라는 말에, 조환은 크게 놀라 입이 굳어 말을 하지 못한다. 연의 제119회 §34–38

곁에 있던 황문시랑 장절이 진왕의 말이 틀렸다며 맞서다가 전각 아래에서 몽둥이에 맞아 죽자, 조환은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빈다. 조환이 가충과 배수에게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묻자, 가충은 한 헌제의 옛일에 따라 수선단을 쌓고 진왕에게 제위를 선양하면 아무 탈 없이 보전할 수 있다고 하고, 조환은 그 말을 따라 가충에게 수선단을 쌓게 한다. 연의 제119회 §38–41

12월 갑자일, 조환은 몸소 전국옥새를 받들고 단 위에 서서 문무 관원을 모으고, 사마염이 단에 올라 큰 예를 받는다. 조환은 단에서 내려와 공복을 갖추어 입고 반열의 맨 앞에 서고, 가충과 배수는 칼을 잡고 그에게 두 번 절하고 땅에 엎드려 명을 듣게 한다. 가충은 그를 진류왕으로 봉하니 금용성에 머물고 조서로 부르지 않으면 서울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고, 조환은 울며 사례하고 떠난다. 태부 사마부는 조환 앞에 엎드려 울며 끝내 위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한다. 연의 제119회 §41–44

제120회는 삼국이 진으로 돌아간 뒤의 일을 적으며, 위주 조환이 태안 원년에 죽었고 유선·손호와 함께 모두 제 명을 누렸다고 한다. 연의 제120회 §61

연의와 다른 점

즉위를 이끈 사람: 연의 제114회에서는 사마소가 상도향공 조황을 황제로 세운다. 정사에서는 고귀향공이 죽자 공경들이 의논하여 그를 맞아 세우기로 했고, 사마염을 북쪽으로 보내 맞아들였다. 연의 제114회 §23정사 위지 권4 §105 · 113

사마소에게 내린 것: 연의 제114회에서 조환은 즉위하자 사마소를 상국·진공으로 봉하고 돈 10만과 비단 1만 필을 내린다. 정사에서는 경원 원년(260) 6월 상국·진공·구석과 함께 돈 천만과 비단 만 필을 내리게 했으나 사마소가 굳이 사양해 그쳤고, 경원 2년과 4년 2월에 다시 명했을 때도 굳이 사양했다. 연의 제114회 §23정사 위지 권4 §114 · 121 · 123

진왕 봉작: 연의 제119회에서는 서천을 거둔 공으로 대신들이 표를 올리고, 조환은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어 사마소를 진왕으로 봉한다. 정사에서는 함희 원년(264) 3월 기묘일 진공의 작위를 올려 왕으로 삼고 열 군을 더 봉했다고 적을 뿐, 대신들의 표는 나오지 않는다. 연의 제119회 §31정사 위지 권4 §129

선위를 재촉한 장면: 연의 제119회에서 사마염은 칼을 차고 궁에 들어와 조환을 몰아세우고, 맞서는 황문시랑 장절을 몽둥이로 때려 죽이며, 가충이 수선단을 쌓으라고 권한다. 정사 진류왕 기록은 함희 2년 12월 임술일 하늘의 녹이 영영 끝났다며 조서를 내려 단을 설치하고 선위했다고 적을 뿐, 이 장면과 장절은 나오지 않는다. 연의 제119회 §37–40정사 위지 권4 §112–153

선위 의식: 연의 제119회에서 조환은 몸소 전국옥새를 받들고 단에 섰다가, 내려와 반열 맨 앞에서 두 번 절하고 엎드려 명을 듣는다. 정사에서는 사자를 보내 황제의 옥새와 인끈과 책서를 받들어 진의 사왕에게 선위했고, 한과 위의 옛 전례와 같았다고 적는다. 연의 제119회 §41 · 43정사 위지 권4 §150

사마부: 연의 제119회에서는 태부 사마부가 떠나는 조환 앞에 엎드려 울며 끝내 위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한다. 정사 진류왕 기록에는 이 일이 없다. 연의 제119회 §44정사 위지 권4 §112–153

선위 뒤의 거처: 연의 제119회에서 조환은 진류왕으로 봉해져 금용성에 머물고, 조서로 부르지 않으면 서울에 들어오지 못한다. 정사는 거처를 금용성으로 옮겼다가 끝내 업에서 머물러 지냈다고 적는다. 연의 제119회 §44정사 위지 권4 §150

죽음: 연의 제120회는 조환이 태안 원년에 죽었고 제 명을 누렸다고 적는다. 정사 진수의 본문은 업에서 지냈다는 데서 끝나고, 죽은 해를 적지 않았다. 연의 제120회 §61정사 위지 권4 §150

친아버지에 대한 예: 정사에서는 즉위한 해 11월 연왕 조우가 표문에 신하라 칭하자, 조서와 유사의 의논으로 신하로 대하지 않는 예를 정했다. 연의에서 조환이 나오는 회에는 이 일이 없다. 정사 위지 권4 §116–119연의 제114회 §23연의 제119회 §31

3KDEX 집필(검수 전) — 문단 끝의 표지는 근거가 된 정사 권 · 연의 회의 그 절로 이어진다.

능력치

정사(진수 『삼국지』 본문)의 점수가 기준입니다. 연의가 같은 인물을 어떻게 다시 그렸는지 항목마다 견주고, 두 원전의 근거로 차이를 설명합니다.

통솔무력지력정치매력덕처세문예언변용인
정사(실선) 대 연의(점선)
  • 통솔3125−6
  • 무력3131±0
  • 지력3830−8
  • 정치3120−11
  • 매력3835−3
  • 덕5545−10
  • 처세5530−25
  • 문예4028−12
  • 언변3525−10
  • 용인3131±0
정사 · 연의 점수와 차이 (연의 − 정사 · 왼쪽 = 연의가 깎음 · 오른쪽 = 연의가 높임)

연의가 만든 능력치 — 정사와 다른 곳 차이 10점 이상

문예·학술정40추정연28 −12

정직접 기록 없음 — 조서 외 기록 없음위지 권4 §116

연사마염이 문으로 도를 논하지 못한다고 함제119회 §38

정치정31연20 −11

정평: 남면했을 뿐 재보가 정사를 총괄위지 권4 §153

연이름만 천자일 뿐 아무것도 스스로 정할 수 없었음제119회 §31

언변·외교정35추정연25 −10

정직접 기록 없음 — 기록 없음위지 권4 §113

연사마염 앞에서 입이 굳어 말을 하지 못함제119회 §38

비슷한 곳 5개 — 근거 보기
  • 통솔정31추정연25 −6

    정직접 기록 없음 — 정사는 재보가 총괄위지 권4 §153

    연사마염이 무로는 나라를 다스리지 못한다고 함제119회 §38

  • 무력정31추정연31추정 ±0

    정직접 기록 없음 — 기록 없음위지 권4 §113

    연직접 기록 없음 — 기록 없음제119회 §38

  • 지력정38추정연30 −8

    정직접 기록 없음 — 기록 없음위지 권4 §153

    연크게 놀라 말을 못 하고 가충에게 방도를 물음제119회 §38제119회 §40

  • 매력정38추정연35추정 −3

    정직접 기록 없음 — 공경이 맞아들여 세운 황제로 추정위지 권4 §113

    연직접 기록 없음 — 사마소가 세운 황제로 추정제114회 §23

  • 안목·용인정31추정연31추정 ±0

    정직접 기록 없음 — 기록 없음위지 권4 §113

    연직접 기록 없음 — 기록 없음제114회 §23

정사 연의 추정 직접 기록이 없어 행적으로 매긴 값(근거 등급 C)

3KDEX 채점 — 정사는 진수 『삼국지』 본문, 연의는 『삼국지연의』 120회 본문이 근거다. 근거 표지를 누르면 원문 리딩의 그 절로 간다.

연의 등장 회차 (4회)

등장미등장 회차 목록 →

소속 이력

  1. 위 · 정사 · 정사 권4 「甘露三年,封安次縣常道鄉公」 · 검수 v38

관계

  • 위 지도자 · 정사

가족

부모조우 연의·정사

Wikidata 역사·연의 인물 항목 기준(정의서 16). 추정 배지가 없는 관계는 정사 원문에서도 확인한 것.

소유·지은 아이템 (1)

소유 이력·지은이는 3KDEX가 원문 근거로 지정 — 검수 전(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