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단 全端
인물 소개
전단은 오의 장수다. 정사에는 따로 전이 없고, 오지와 위지의 여러 전에 나온다. 종회전은 그를 전종의 조카로, 고담전은 전종의 아들로 적는다. 적오 4년(241) 작피 싸움에서 전서와 함께 나아가 쳤고, 건흥 원년(252)에는 제갈각이 동흥에 쌓은 두 성 가운데 서쪽 성을 지켰다. 정사 위지 권28 §99정사 오지 권7 §45정사 오지 권2 §95정사 오지 권3 §4
감로 2년(257) 위의 제갈탄이 수춘에서 반란하자 전역·당자 등과 함께 구원하러 갔다. 수춘성에 있다가 그해 12월 전역 등과 함께 성을 나와 사마문왕(사마소)에게 항복했다. 정사 위지 권28 §36 · 99–100정사 오지 권3 §17
연의에는 제108회에 동흥의 왼쪽 성을 지키는 오의 장수로 처음 나와 120회 가운데 4회에 등장하며, 이름이 회목에 든 회는 없다. 제112회에서 아들 전의가 성안으로 쏘아 보낸 편지를 받은 전역과 함께 성문을 열고 나와 위에 항복한다. 연의 제108회 §13연의 제112회 §9–10
정사 기록
적오 4년(241) 여름 4월 위장군 전종이 회남을 공략해 작피에서 위의 장수 왕릉과 싸웠다. 고담전에 따르면 이때 대도독 전종의 군이 불리해 위군이 오영장 진아의 군을 무너뜨리자, 고담의 아우 고승과 장휴가 분전해 위군을 멈추게 했다. 그때 전종의 여러 아들 전서와 전단도 장수로 있었는데, 적이 멈추자 나아가 쳤고 왕릉의 군은 이 때문에 물러났다. 정사 오지 권2 §95정사 오지 권7 §44–45
공을 논할 때 적을 멈추게 한 공은 크고 적을 물리친 공은 작다고 여겨, 장휴와 고승은 잡호장군이 되었으나 전서와 전단은 편장·비장에 그쳤다. 전기(全寄) 부자는 더욱 원한을 품고 함께 고담을 모함했고, 고담은 이에 연좌되어 교주로 유배되었다. 정사 오지 권7 §44–45
건흥 원년(252) 겨울 10월 태부 제갈각은 군사를 이끌고 소호를 막고, 동흥에 무리를 모아 다시 큰 둑을 쌓았다. 좌우로 산에 기대 둑을 끼고 두 성을 쌓아 각각 천 명을 남기고, 장군 전단에게 서쪽 성을, 도위 유략에게 동쪽 성을 지키게 한 뒤 군사를 이끌고 돌아왔다. 정사 오지 권3 §4정사 오지 권19 §28
위는 오의 군대가 자기 강토에 들어온 것을 부끄러워하여, 12월 호준·제갈탄 등에게 보병과 기병 7만을 주어 두 보루를 에워싸고 둑을 무너뜨리게 했다. 호준 등은 부교를 놓아 건너 둑 위에 진을 치고 군사를 나누어 두 성을 쳤으나, 성이 높고 험한 곳에 있어 갑자기 함락하지 못했다. 군사 4만을 일으켜 밤낮으로 달려온 제갈각은 12월 무오일(서기 253년 초) 동흥에서 위군을 크게 깨뜨리고 한종·환가 등을 죽였다. 정사 오지 권3 §4–5정사 오지 권19 §28–29
감로 2년(257) 5월 위의 정동대장군 제갈탄이 회남의 무리를 거느리고 수춘성을 지키며, 장군 주성을 보내 오에 신하를 칭하는 상소를 올리고 장사 오강에게 아들 제갈정을 데려가 구원을 청하게 했다. 오는 6월 문흠·당자·전단 등에게 보병과 기병 3만을 주어 제갈탄을 구원하게 했다. 제갈탄전은 오가 전역·전단·당자·왕조 등에게 3만 명을 이끌고 몰래 문흠과 함께 가게 했고, 진남장군 왕기(王基)의 포위가 아직 닫히기 전에 당자·문흠 등이 성 동북쪽에서 산을 끼고 험한 지형을 타 성안으로 들어갔다고 적는다. 정사 오지 권3 §16정사 위지 권28 §36
대장군 사마문왕(사마소)은 중앙과 지방의 군 26만을 거느리고 와서 왕기·진건 등에게 수춘을 안팎 두 겹으로 에워싸게 했고, 구원하러 온 오의 주이는 거듭 꺾여 손침에게 죽임을 당했다. 종회전은 오의 대장 전종이 손권과 혼인으로 맺어진 친척이자 중신이었으며, 그 아들 전역, 손자 전정, 조카 전단·전편·전집 등이 모두 병사를 거느리고 제갈탄을 구원하러 왔다고 적는다. 그 사이 건업에 남은 전씨 자제들이 위로 넘어왔다. 삼사주전은 11월 전서의 아들 전의(全禕)와 전의(全儀)가 어머니를 모시고 위로 달아났다고 적고, 종회전은 전역의 형의 아들 전휘·전의(全儀)가 집안 다툼과 송사 끝에 어머니를 모시고 부곡 수십 가를 거느린 채 강을 건너 스스로 문왕에게 귀순했다고 적는다. 정사 위지 권28 §37–38 · 99정사 오지 권3 §17
종회는 계책을 세워 몰래 전휘·전의를 대신해 편지를 쓰고, 그들이 가까이 믿는 사람에게 들려 성으로 들어가 전역 등에게 알리게 했다. 편지는 오 조정이 전역 등이 수춘의 포위를 풀지 못한 것에 노하여 여러 장수의 가족을 모두 죽이려 하므로 도망쳐 와서 목숨을 맡겼다고 했다. 전역 등은 두려워 거느린 병사를 이끌고 동쪽 성문을 열고 나와 항복했고, 모두 봉작과 총애를 입었다. 성안은 이로 말미암아 서로 등지고 흩어졌다. 정사 위지 권28 §99–100
삼사주전은 12월 전단·전역 등이 수춘성에서 사마문왕에게 나아갔다고 적고, 삼소제기는 겨울 12월 오의 대장 전단·전역 등이 무리를 이끌고 항복했다고 적는다. 제갈탄전은 대장군이 반간계를 써서 전역 등을 달랬고, 전역 등이 무리 수천 명을 이끌고 성문을 열고 나오자 성안이 두려움에 떨었다고 적는다. 정사 오지 권3 §17정사 위지 권4 §87정사 위지 권28 §38
비빈전은 당시 전씨 가문에서 후에 봉해진 사람이 다섯으로 모두 병마를 맡았는데, 제갈탄이 수춘을 들어 귀부해 오자 전역·전단·전의(全禕)·전의(全儀) 등이 모두 이 틈을 타 위에 항복했고, 전희는 모의가 새어 나가 죽임을 당해 이로 말미암아 전씨 일족이 쇠약해졌다고 적는다. 뒤에 손량을 폐한 손침은 손휴에게 보낸 글에서, 태상 전상이 여러 대에 걸쳐 은혜를 입고도 일족을 단속하지 못했고 전단 등이 성을 버리고 위에 붙었다고 했다. 정사 오지 권5 §29정사 오지 권19 §88–91
연의 묘사
연의 제108회에서 사마소는 호준을 선봉으로 삼아 동흥의 큰 둑과 좌우 두 성을 빼앗게 한다. 호준은 부교를 건너 둑 위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환가와 한종을 보내 두 성을 치게 하는데, 왼쪽 성은 오장 전단이, 오른쪽 성은 오장 유략이 지킨다. 두 성이 높고 가파르며 견고해 급히 떨어뜨리지 못하고, 전단과 유략은 위군의 기세가 큰 것을 보고 감히 나가 싸우지 못한 채 성을 죽기로 지킨다. 연의 제108회 §10 · 13
큰 눈이 내리는 가운데 호준이 장수들과 술자리를 벌이자, 정봉이 갑옷을 벗고 짧은 칼만 찬 군사 3천으로 기슭에 올라 위군 영채를 치고 한종과 환가를 벤다. 위군은 끊어진 부교 때문에 태반이 물에 빠져 죽는다. 연의 제108회 §13 · 15–17
제111회에서 제갈탄의 장사 오강이 아들 제갈정을 인질로 데려와 구원을 청하자, 손침은 대장 전역·전단을 주장으로, 어전을 후군으로, 주이·당자를 선봉으로, 문흠을 길잡이로 삼아 군사 7만을 세 부대로 나누어 보낸다. 연의 제111회 §31–32
제112회에서 주이가 손침에게 다시 이기지 못하면 목을 베겠다는 꾸지람을 듣고 돌아와 의논하자, 어전은 포위되지 않은 수춘의 남문으로 들어가 성을 지키겠다고 한다. 전역·전단·문흠 등도 모두 성에 들어가기를 원해 어전과 함께 군사 1만을 이끌고 남문으로 들어간다. 주이가 또 패하자 손침은 그를 베고, 전단의 아들 전의에게 위군을 물리치지 못하면 너희 부자는 자기를 볼 생각도 말라고 꾸짖은 뒤 건업으로 돌아간다. 연의 제112회 §5–6 · 8
전의는 수춘으로 들어가려다 위군의 기세가 큰 것을 보고 사마소에게 항복해 편장군이 되고, 아버지 전단과 숙부 전역에게 손침이 어질지 못하니 위에 항복하는 것만 못하다는 집안 편지를 써서 성안으로 쏘아 보낸다. 편지를 받은 전역은 전단과 함께 수천 명을 이끌고 성문을 열고 나와 항복한다. 제113회에서 손침은 전단·당자 등이 위에 항복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노해 그들의 가족을 모조리 벤다. 연의 제112회 §9–10연의 제113회 §2
연의와 다른 점
작피 싸움: 연의에서 전단은 제108회 동흥 싸움에 처음 나오고, 작피 싸움은 연의에 없다. 정사 고담전에서는 적오 4년(241) 작피에서 장휴·고승이 위군을 멈추게 한 뒤 전단이 전서와 함께 나아가 쳤고, 왕릉의 군이 이 때문에 물러났다. 공은 작다고 여겨져 편장·비장에 그쳤다. 연의 제108회 §13정사 오지 권2 §95정사 오지 권7 §44–45
구원군: 연의 제111회에서 손침은 전역·전단을 주장으로 삼아 군사 7만을 세 부대로 나누어 보낸다. 정사 삼사주전은 문흠·당자·전단 등에게 보병과 기병 3만을 주었다고 적고, 제갈탄전은 전역·전단·당자·왕조 등이 3만 명을 이끌고 문흠과 함께 왔다고 적는다. 연의 제111회 §32정사 오지 권3 §16정사 위지 권28 §36
성에 들어간 길: 연의 제112회에서 전단은 전역·문흠 등과 함께 어전을 따라 포위되지 않은 남문으로 수춘에 들어간다. 정사 제갈탄전에서는 왕기(王基)의 포위가 아직 닫히기 전에 당자·문흠 등이 성 동북쪽에서 산을 끼고 험한 지형을 타 성안으로 들어갔다. 연의 제112회 §6정사 위지 권28 §36
전의: 연의 제112회에서 전의는 전단의 아들이다. 정사 삼사주전은 전의(全禕)를 전서의 아들로 적고, 종회전은 위로 넘어온 이들을 전역의 형의 아들 전휘·전의(全儀)로 적는다. 연의 제112회 §8정사 오지 권3 §17정사 위지 권28 §99
항복하게 한 편지: 연의 제112회에서는 사마소에게 항복한 전의가 아버지 전단과 숙부 전역에게 집안 편지를 써서 성안으로 쏘아 보낸다. 정사 종회전에서는 집안 다툼 끝에 스스로 위에 귀순한 전휘·전의(全儀)를 대신해 종회가 몰래 편지를 쓰고, 그들이 가까이 믿는 사람에게 들려 성안으로 들여보냈다. 편지는 오 조정이 여러 장수의 가족을 모두 죽이려 한다고 했다. 연의 제112회 §9–10정사 위지 권28 §99–100
남은 가족: 연의 제113회에서 손침은 전단·당자 등의 가족을 모조리 벤다. 정사 제갈탄전은 위가 당자와 비장들에게 칭호와 지위를 주자 강동도 이에 감동하여 모두 그들의 가족을 죽이지 않았다고 적는다. 비빈전에서 죽임을 당한 전씨는 모의가 새어 나간 전희다. 연의 제113회 §2정사 위지 권28 §46–47정사 오지 권5 §29
3KDEX 집필(검수 전) — 문단 끝의 표지는 근거가 된 정사 권 · 연의 회의 그 절로 이어진다.
능력치
정사(진수 『삼국지』 본문)의 점수가 기준입니다. 연의가 같은 인물을 어떻게 다시 그렸는지 항목마다 견주고, 두 원전의 근거로 차이를 설명합니다.
- 통솔5045−5
- 무력4036−4
- 지력3032+2
- 정치3331−2
- 매력3635−1
- 덕2525±0
- 처세4240−2
- 문예3131±0
- 언변3331−2
- 용인3331−2
연의가 만든 능력치 — 정사와 다른 곳 차이 10점 이상
10점 이상 차이 나는 항목이 없습니다 — 연의도 정사와 비슷하게 그렸습니다.
비슷한 곳 10개 — 근거 보기
정동흥 둑의 서쪽 성을 지키고 수춘 구원군 3만의 장수가 됨오지 권19 §28오지 권3 §16
정직접 기록 없음 — 성을 지킨 장수의 역할로 추정오지 권19 §28
연위군의 기세에 감히 나가 싸우지 못함제108회 §13
정종회가 꾸민 거짓 집안 편지에 두려워 항복함위지 권28 §99위지 권28 §100
정구원하러 들어간 수춘성을 버리고 위에 항복함오지 권3 §17오지 권19 §91
정겁에 질려 성문을 열고 나갔으나 위에서 봉작을 받음위지 권28 §100위지 권4 §87
연구원군이 물러간 뒤 아들 전의의 권유로 수천 명을 이끌고 항복함제112회 §10
정사 연의 추정 직접 기록이 없어 행적으로 매긴 값(근거 등급 C)
3KDEX 채점 — 정사는 진수 『삼국지』 본문, 연의는 『삼국지연의』 120회 본문이 근거다. 근거 표지를 누르면 원문 리딩의 그 절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