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든 넘어 책을 교감하고 장서가 당대 최다, 평은 호학을 칭찬촉지 권11 §14촉지 권11 §15촉지 권11 §50
연직접 기록 없음 — 추정제63회 §32
향랑은 자가 거달이고 양양 의성 사람이다. 형주목 유표 밑에서 임저현장을 지내다 유표가 죽자 유비에게 귀순했고, 촉이 평정된 뒤 파서태수를 거쳐 후주 때 보병교위로서 승상장사를 겸했다. 정사 촉지 권11 §13
건흥 5년(227) 제갈량을 따라 한중에 갔다가, 친하던 마속이 도망친 사정을 알고도 고발하지 않아 관직을 잃었다. 뒤에 광록훈·좌장군에 올라 현명정후에 봉해졌고, 만년에는 전적에 마음을 쏟아 여든이 넘어서도 손수 책을 교감했다. 연희 10년(247)에 죽었다. 정사 촉지 권11 §14–15
진수는 평에서 '향랑은 배우기를 좋아하여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연의에는 제63회에 관우를 보좌해 형주를 지키는 문관 가운데 이름이 한 번 나와 120회 가운데 1회에 등장하며, 회목에 이름이 오르지는 않는다. 정사 촉지 권11 §50연의 제63회 §32
향랑은 자가 거달이고 양양 의성 사람이다. 형주목 유표가 그를 임저현장으로 삼았고, 유표가 죽자 유비에게 귀순했다. 유비는 강남을 평정한 뒤 향랑에게 자귀·이도·무·이릉 네 현의 군사와 민정을 감독하게 했다. 촉이 평정되자 파서태수가 되었고, 얼마 뒤 자리를 옮겼다가 다시 방릉으로 옮겼다. 정사 촉지 권11 §13
후주가 즉위하자 보병교위가 되었고, 왕련을 대신해 승상장사를 겸했다. 승상 제갈량이 남쪽을 정벌할 때 향랑은 남아서 후방의 일을 통괄했다. 양홍전에 따르면, 건흥 5년(227) 제갈량이 북쪽으로 한중에 머물며 장예를 유부장사로 쓰려 하자, 양홍은 장예가 성품이 공평하지 못해 전적으로 맡길 수 없을 듯하니 향랑을 남겨 두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향랑은 속과 겉이 다른 점이 적다는 것이었다. 정사 촉지 권11 §13 · 32
요립전에 따르면, 요립은 승상연 이소와 장완이 찾아오자 조정의 인물들을 깎아내리며 향랑과 문공을 평범하고 속된 사람일 뿐이라고 했다. 향랑은 예전에 마량 형제를 받들며 성인이라 일컫더니, 지금은 장사가 되어 평소 도에 잘 맞추어 처신한다는 것이었다. 정사 촉지 권10 §35–36
건흥 5년(227) 향랑은 제갈량을 따라 한중으로 갔다. 향랑은 평소 마속과 친했는데, 마속이 도망쳤을 때 그 사정을 알면서도 고발하지 않았으므로, 제갈량이 그를 원망해 관직을 면하고 성도로 돌려보냈다. 몇 해 뒤 광록훈이 되었고, 제갈량이 죽은 뒤 좌장군으로 옮겼으며, 옛 공을 추록해 현명정후에 봉해지고 특진의 지위를 받았다. 정사 촉지 권11 §14
연희 원년(238) 정월 후주가 장귀인(후주장황후)을 황후로 세울 때, 행승상사 좌장군 향랑이 부절을 가지고 가서 새수를 내려 주었다. 같은 달 후주의 아들 유선(劉璿)을 황태자로 세울 때도 행승상사 좌장군 향랑이 부절을 가지고 가서 인수를 내려 주었다. 정사 촉지 권4 §15 · 24
향랑은 젊었을 때 문학을 두루 섭렵했으나 몸가짐을 단속하지 않았고, 관리로서의 능력으로 칭찬받았다. 장사에서 물러난 뒤 일 없이 한가로이 지낸 지 30년 가까이 되자, 다시 전적에 마음을 쏟아 부지런히 힘썼다. 여든이 넘어서도 손수 책을 교감해 잘못을 바로잡았고, 모아 둔 책이 당시에 가장 많았다. 문을 열어 손님을 맞고 후진을 이끌었으나 옛 도리를 강론할 뿐 시사에는 관여하지 않았으므로, 위로는 집정자부터 아래로는 어린아이와 갓 관을 쓴 젊은이까지 모두 그를 공경하고 중히 여겼다. 정사 촉지 권11 §14–15
연희 10년(247)에 죽었다. 아들 향조가 뒤를 이었고, 경요 연간에 어사중승이 되었다. 형의 아들 향총은 유비 때 아문장이 되어 자귀의 패전 때 그 군영만 온전했고, 제갈량은 북쪽으로 출정하며 후주에게 올린 표문에서 군영의 일을 모두 그에게 물으라고 했다. 향총은 중령군이 되었다가 연희 3년(240) 한가의 만이를 치다가 살해되었다. 정사 촉지 권11 §15 · 17–18
진수는 평에서 곽준은 외로운 성을 지켜 기울지 않았고, 왕련은 굳은 절개를 지켜 바꾸지 않았으며, 향랑은 배우기를 좋아하여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하는 등 이 권의 여섯 사람을 들어, 모두 기록할 만한 점이 있다고 했다. 정사 촉지 권11 §50
형주에서 맡은 일: 연의 제63회에서 향랑은 제갈량이 서천으로 들어갈 때 마량·이적·미축과 함께 남아 관우를 보좌하며 형주를 지킨다. 정사 향랑전에서는 유비가 강남을 평정한 뒤 자귀·이도·무·이릉 네 현의 군사와 민정을 감독했고, 촉이 평정되자 파서태수가 되었다. 연의 제63회 §32정사 촉지 권11 §13
승상장사: 연의에서 향랑은 제63회 뒤로 나오지 않고, 승상장사로서 남쪽 정벌 때 후방을 맡은 일도 없다. 정사에서는 후주 때 왕련을 대신해 승상장사를 겸했고, 제갈량이 남쪽을 정벌할 때 남아서 후방의 일을 통괄했다. 연의 제63회 §32정사 촉지 권11 §13
마속의 일: 연의 제96회에서 마속은 스스로 몸을 묶고 장막 앞에 꿇어앉았다가 끝내 목이 베이며, 향랑은 이 일에 나오지 않는다. 정사 향랑전에서는 마속이 도망쳤을 때 향랑이 그 사정을 알면서도 고발하지 않았고, 제갈량이 그를 원망해 관직을 면하고 성도로 돌려보냈다. 연의 제96회 §9 · 11–12정사 촉지 권11 §14
만년: 연의에는 향랑의 그 뒤 행적이 없다. 정사에서는 좌장군·특진에 이르러 연희 원년(238) 황후와 황태자의 책봉에 부절을 가지고 갔고, 만년에 전적을 교감하며 후진을 이끌다가 연희 10년(247)에 죽었다. 연의 제63회 §32정사 촉지 권4 §15 · 24정사 촉지 권11 §14–15
3KDEX 집필(검수 전) — 문단 끝의 표지는 근거가 된 정사 권 · 연의 회의 그 절로 이어진다.
정사(진수 『삼국지』 본문)의 점수가 기준입니다. 연의가 같은 인물을 어떻게 다시 그렸는지 항목마다 견주고, 두 원전의 근거로 차이를 설명합니다.
정여든 넘어 책을 교감하고 장서가 당대 최다, 평은 호학을 칭찬촉지 권11 §14촉지 권11 §15촉지 권11 §50
연직접 기록 없음 — 추정제63회 §32
정승상장사로 남정 때 후방을 통괄, 관리로서의 능력으로 칭찬촉지 권11 §13촉지 권11 §14
연직접 기록 없음 — 관우를 보좌할 문관으로 뽑힌 일로 추정제63회 §32
정손님을 맞고 후진을 이끌어 위아래 모두 공경하고 중히 여김촉지 권11 §15
연직접 기록 없음 — 추정제63회 §32
정문을 열어 후진을 이끌어 받아들임촉지 권11 §15
연직접 기록 없음 — 추정제63회 §32
정물러난 뒤 시사에 관여하지 않고 옛 도리만 강론해 칭송받음촉지 권11 §15
연직접 기록 없음 — 추정제63회 §32
정직접 기록 없음 — 네 현의 군사·민정 감독으로 추정촉지 권11 §13
연직접 기록 없음 — 형주에 남은 문관으로 추정제63회 §32
정직접 기록 없음 — 추정촉지 권11 §13
연직접 기록 없음 — 추정제63회 §32
정직접 기록 없음 — 추정촉지 권11 §14
연직접 기록 없음 — 추정제63회 §32
정도망친 마속의 사정을 알고도 고발하지 않아 면직, 몸가짐 단속 안 함촉지 권11 §14촉지 권10 §36
연직접 기록 없음 — 추정제63회 §32
정직접 기록 없음 — 추정촉지 권11 §13
연직접 기록 없음 — 추정제63회 §32
정사 연의 추정 직접 기록이 없어 행적으로 매긴 값(근거 등급 C)
3KDEX 채점 — 정사는 진수 『삼국지』 본문, 연의는 『삼국지연의』 120회 본문이 근거다. 근거 표지를 누르면 원문 리딩의 그 절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