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 曹訓
인물 소개
조훈은 위나라 대사마 조진의 아들이며 대장군 조상의 아우다. 정사에는 따로 전이 없고, 위지 권9 제하후조전의 조진 · 조상 기사와 권4 삼소제기에 이름이 나온다. 명제는 조진이 죽은 뒤 그의 다섯 아들 조희 · 조훈 · 조칙 · 조언 · 조애를 모두 열후로 봉했다. 정사 위지 권9 §69 · 73정사 위지 권4 §28
제왕이 즉위해 조상이 정사를 보좌하자 조훈은 무위장군이 되었다. 가평 원년(249) 정월 황제가 고평릉에 참배하러 간 사이 태부 사마선왕(사마의)이 아뢰어 조상 · 조희 · 조언과 함께 그의 관직을 면하고 제후로서 사저로 물러나게 했고, 그 뒤 조훈은 조상 · 조희 · 하안 등과 함께 처형되고 삼족이 멸해졌다. 정사 위지 권4 §2 · 28정사 위지 권9 §73 · 88
진수는 권9의 평에서 조상이 덕은 얇은데 지위는 높았다고 했을 뿐 조훈은 따로 다루지 않았다. 연의에는 제106회에 조상이 무위장군으로 삼는 아우로 처음 나와 120회 가운데 2회에 등장하며, 이름이 회목에 든 회는 없다. 정사 위지 권9 §132연의 제106회 §36연의 제107회 §1
정사 기록
조훈의 아버지 조진은 자가 자단이며 태조의 친척 조카다. 조진은 태화 5년(231) 3월에 죽었고, 아들 조상이 뒤를 이었다. 명제는 조서를 내려 조진이 충절을 실천해 두 조종을 보좌했다고 기리고, 조진의 다섯 아들 조희 · 조훈 · 조칙 · 조언 · 조애를 모두 열후로 봉했다. 정사 위지 권9 §62 · 69정사 위지 권3 §21
경초 3년(239) 정월 명제가 죽고 제왕이 즉위하자 대장군 조상과 태위 사마선왕이 정사를 보좌했다. 조상은 시중이 더해지고 무안후로 고쳐 봉해졌다. 조상의 아우 조희는 중령군, 조훈은 무위장군, 조언은 산기상시 · 시강이 되었고, 그 밖의 여러 아우들도 모두 열후로서 황제를 곁에서 모시며 궁중 문을 드나들었다. 진수는 그 귀함과 총애가 이보다 더 성할 수 없었다고 적었다. 무위장군은 조상이 명제 때 거친 자리이기도 하다. 정사 위지 권4 §2정사 위지 권9 §71–73
정시 10년(249) 정월, 천자의 수레가 고평릉에 참배하러 가자 조상 형제가 모두 따라갔다. 삼소제기는 이해를 가평 원년으로 적는다. 사마선왕은 먼저 무고를 점거하고 낙수의 부교에 주둔한 뒤 상주했다. 태위 장제와 상서령 사마부 등이 조상에게 임금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있으니 그 형제가 병권을 쥐고 숙위를 맡아서는 안 된다고 여겨 영녕궁에 아뢰었고, 황태후의 영에 따라 담당자와 황문령에게 명해 조상 · 조희 · 조훈의 관리와 병사를 파하고 열후의 신분으로 저택에 돌아가게 했다는 것이다. 정사 위지 권9 §80 · 83정사 위지 권4 §28
대사농 환범이 조상에게 가서 천자의 수레를 허창으로 옮기고 외지의 군사를 불러 모으라고 설득했으나, 조상 형제는 머뭇거리며 결정하지 못했다. 시중 허윤과 상서 진태의 설득으로 조상이 죄를 인정하고 죽음을 청하니, 조상 형제는 면직되어 열후의 신분으로 저택에 돌아갔다. 삼소제기는 이때 사마선왕이 아뢰어 대장군 조상과 그 아우인 중령군 조희, 무위장군 조훈, 산기상시 조언의 관직을 면하고 제후로서 사저로 물러나게 했다고 적는다. 정사 위지 권9 §84–85정사 위지 권4 §28
그 뒤 황문 장당이 조상이 하안 등과 함께 몰래 반역을 꾀하고 3월 중에 거사하려 했다고 진술했다. 공경과 조정 신하들이 조정에서 논의해 모두 대역무도에 해당한다고 하니, 조상 · 조희 · 조훈 · 하안 · 등양 · 정밀 · 필궤 · 이승 · 환범 · 장당 등을 잡아들여 모두 처형하고 삼족을 멸했다. 가평 연간에 조진의 족손 조희(曹熙)가 신창정후로 봉해져 조진의 제사를 받들었다. 정사 위지 권9 §87–88
진수는 권9의 평에서 조진 등이 가까운 친척이자 오랜 벗으로서 공업을 도왔다고 하고, 조상은 덕이 얇은데 지위는 높았으며 가득 차 넘치는 데 빠졌으니 『주역』에서 밝히고 도가에서 꺼리는 바라고 했다. 조훈에 대해서는 따로 평하지 않았다. 정사 위지 권9 §132
연의 묘사
연의 제106회에서 하안이 큰 권력을 남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고 하자, 조상은 위주 조방에게 아뢰어 사마의를 태부로 올리게 하고, 이때부터 병권은 모두 조상에게 돌아간다. 조상은 아우 조희를 중령군으로, 조훈을 무위장군으로, 조언을 산기상시로 삼아 각각 어림군 3천을 이끌고 금궁을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고, 하안 · 등양 · 정밀을 상서로, 필궤를 사례교위로, 이승을 하남윤으로 삼는다. 연의 제106회 §35–36
같은 회에서 조상이 위주 조방에게 청해 고평릉에 제사를 올리러 나서자, 조상은 세 아우와 심복 하안 등을 이끌고 어림군과 함께 어가를 호위한다. 사농 환범이 주공께서 금군을 총괄하시니 형제가 모두 나가서는 안 된다고 간하지만, 조상은 채찍으로 가리키며 누가 감히 변란을 일으키겠느냐고 꾸짖는다. 연의 제106회 §47–48
제107회에서 사마의는 조상이 아우 조희 · 조훈 · 조언과 심복들, 그리고 어림군을 거느리고 위주 조방을 따라 명제의 능에 참배하러 성을 나갔다는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한다. 사마의가 올린 표문은 장제와 사마부 등의 뜻을 영녕궁에 아뢰어 황태후의 영을 받았다며, 조상 · 조희 · 조훈의 관리와 군사를 파하고 후작의 신분으로 저택에 돌아가게 했다고 아뢴다. 연의 제107회 §1 · 12
그 뒤 연의는 조훈의 이름을 다시 들지 않는다. 조상은 두 아우를 돌아보며 어찌하면 좋으냐고 묻고, 환범은 결단하지 못하는 조상을 두고 '지금 그 형제 세 사람은 참으로 돼지 새끼와 송아지일 뿐'이라고 운다. 조상 삼형제는 사저로 돌아가 갇히고, 사마의는 장당과 하안 등의 자백을 받은 뒤 조상 삼형제와 연루된 죄인들을 저잣거리에서 베고 삼족을 멸한다. 연의 제107회 §13 · 18 · 20–23
연의와 다른 점
열후 봉작: 정사에서 명제는 조진이 죽은 뒤 그의 공을 추념하여 조훈 등 다섯 아들을 모두 열후로 봉했다. 연의에는 이 일이 없고, 조훈은 제106회에 조상의 아우로 처음 나온다. 정사 위지 권9 §69연의 제106회 §36
무위장군 임명: 연의 제106회에서는 조상이 아우 조훈을 무위장군으로 삼아 어림군 3천을 이끌고 금궁을 마음대로 드나들게 한다. 정사는 조훈이 무위장군이 되고 여러 아우가 열후로서 궁중 문을 드나들었다고 적을 뿐, 거느린 군사의 수는 적지 않는다. 연의 제106회 §36정사 위지 권9 §73
형제가 함께 나간 일: 연의 제106회에서는 환범이 형제가 모두 성을 나가서는 안 된다고 간하고 조상이 이를 꾸짖는다. 정사 진수 본문은 천자의 수레가 고평릉에 갈 때 조상 형제가 모두 따라갔다고만 적는다. 연의 제106회 §48정사 위지 권9 §80
처형의 경위: 연의 제107회에서는 사마의가 장당과 하안 등의 자백을 받은 뒤 곧 조상 삼형제와 연루된 죄인들을 저잣거리에서 베고 삼족을 멸하며, 조훈의 이름은 들지 않는다. 정사에서는 장당의 진술 뒤 공경과 조정 신하들이 조정에서 논의하여 대역무도로 정하고, 처형한 사람으로 조상 · 조희 다음에 조훈의 이름을 든다. 연의 제107회 §22–23정사 위지 권9 §87–88
3KDEX 집필(검수 전) — 문단 끝의 표지는 근거가 된 정사 권 · 연의 회의 그 절로 이어진다.
능력치
정사(진수 『삼국지』 본문)의 점수가 기준입니다. 연의가 같은 인물을 어떻게 다시 그렸는지 항목마다 견주고, 두 원전의 근거로 차이를 설명합니다.
- 통솔4540−5
- 무력3835−3
- 지력3533−2
- 정치3331−2
- 매력3833−5
- 덕3633−3
- 처세2830+2
- 문예3331−2
- 언변3331−2
- 용인3331−2
연의가 만든 능력치 — 정사와 다른 곳 차이 10점 이상
10점 이상 차이 나는 항목이 없습니다 — 연의도 정사와 비슷하게 그렸습니다.
비슷한 곳 10개 — 근거 보기
정사 연의 추정 직접 기록이 없어 행적으로 매긴 값(근거 등급 C)
3KDEX 채점 — 정사는 진수 『삼국지』 본문, 연의는 『삼국지연의』 120회 본문이 근거다. 근거 표지를 누르면 원문 리딩의 그 절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