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관 衛瓘

정사연의 위 자(字) 伯玉 Wei GuanBoyu백옥衞瓘卫瓘

프로필
직업정무장 · 진서장군 연무장 · 감군소속위
등장정연수록
출생출신지하동군 안읍현 추정
사망 원인정피살 추정
존재실존언급정11회

인물 소개

위관은 위기의 아들로, 아버지가 죽자 뒤를 이었고 함희 연간에 진서장군이 되었다. 정사에는 따로 전이 없고, 아버지 위기의 전기 끝과 등애 · 종회의 전기, 삼소제기에 나온다. 정사 위지 권21 §48정사 위지 권28 §79 · 121정사 위지 권4 §129

촉이 평정된 뒤 감군으로서 문왕의 뜻을 등애에게 전해 멋대로 행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등애가 함거로 불려 갈 때는 종회보다 앞서가 문왕의 친필 명령으로 등애의 군을 타일러 무기를 내려놓게 했다. 종회가 죽은 뒤 등애 본영의 장병들이 등애를 빼내어 돌아오려 하자, 전속 등을 보내 치게 했고, 그들은 면죽 서쪽에서 등애를 베었다. 정사 위지 권28 §79 · 121 · 81

연의에는 제116회에 종회의 진영에 모인 감군으로 처음 나와 120회 가운데 4회에 등장하며, 이름이 회목에 든 회는 없다. 제119회에서 격문을 띄워 등애의 부장들을 거둔 뒤 새벽에 부중에 뛰어들어 등애 부자를 붙잡는다. 연의 제116회 §3연의 제119회 §2–3

정사 기록

위관은 위기의 아들이다. 위기는 하동군 안읍현 사람으로 한과 위를 거치며 때때로 충언을 올렸고, 죽자 시호를 경후라 했다. 위관이 그 뒤를 이었고, 함희 연간에 진서장군이 되었다. 정사 위지 권21 §35 · 47–48

등애가 촉을 평정한 뒤 황제의 명을 받든다는 명분으로 관직을 내리자, 문왕(사마소)은 감군 위관을 시켜 '일은 마땅히 보고를 기다려야 하니, 멋대로 행해서는 안 된다'고 등애를 타일렀다. 등애는 다시 말을 올려, 『춘추』의 뜻에 대부가 국경을 나가 사직을 편안하게 하고 국가를 이롭게 할 수 있는 일이면 독단해도 좋다고 했다며 따르지 않았다. 종회 · 호열 · 사찬 등이 모두 등애의 행위가 도리에 어긋나고 반역하는 것이라고 아뢰자, 조서를 내려 함거로 등애를 불러들이게 했다. 정사 위지 권28 §79–80

종회는 속으로 다른 뜻을 품고, 등애에게 반역의 낌새가 있다고 몰래 아뢰었다. 문왕은 등애가 혹시 명을 따르지 않을까 두려워 종회에게 함께 성도로 진군하게 했다. 감군 위관은 종회보다 앞서가며 문왕의 친필 명령으로 등애의 군에 알려 타일렀고, 등애의 군은 모두 무기를 내려놓았다. 마침내 등애는 붙잡혀 함거에 실렸다. 삼소제기는 함거로 등애를 불러들인 일을 함희 원년(264) 정월 임술일에 적었다. 정사 위지 권28 §121정사 위지 권4 §128

등애 부자가 갇히자 종회는 성도에 이르러 먼저 등애를 압송하고 그 뒤에 난을 일으켰다. 종회가 죽은 뒤, 등애 본영의 장병들이 뒤쫓아 나가 등애를 함거에서 빼내어 맞이해 돌아오려 했다. 위관은 전속 등을 보내 등애를 치게 했고, 그들은 면죽 서쪽에서 등애와 마주쳐 그를 베었다. 아들 등충도 등애와 함께 죽었다. 정사 위지 권28 §81

함희 원년(264) 6월, 진서장군 위관은 옹주의 병사가 성도현에서 옥벽과 옥인을 하나씩 얻었다고 올렸다. 인장의 글자는 '성신'과 비슷했는데, 주 성왕이 벼를 돌려보낸 고사의 뜻에 따라 백관에게 널리 보이고 상국부에 보관했다. 진수 본문은 그 뒤의 일과 그의 죽음을 적지 않았다. 정사 위지 권4 §129정사 위지 권21 §48

연의 묘사

연의 제116회에서 종회가 영채를 다 세우고 장수들을 모아 명령을 들을 때, 감군 위관은 호군 호열, 대장 전속 · 방회 등 80여 명과 함께 그 자리에 있다. 제117회에서는 강유를 놓치고 패한 제갈서를 종회가 베라고 하자, 제갈서가 비록 죄가 있으나 등 정서장군이 거느리는 사람이니 그를 죽이면 화합하는 기운이 상할까 염려된다며 말린다. 종회는 등애라도 죄가 있으면 베겠다고 하지만, 여러 사람이 힘써 말리자 제갈서를 함거에 실어 낙양으로 보낸다. 연의 제116회 §3연의 제117회 §3–4

제118회에서 사마소는 등애의 글을 읽고 그에게 제멋대로 하려는 마음이 있다고 깊이 의심해, 먼저 친필 서신을 위관에게 보내고 뒤이어 등애를 태위로 삼는 조서를 내린다. 등애가 조서를 받자 위관은 그 서신을 꺼내 주는데, 등애가 말한 일은 아뢰어 회답을 기다려야 하며 함부로 시행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등애는 장수가 밖에 있을 때에는 임금의 명이라도 받지 않는 것이 있다며 다시 글을 써 보낸다. 사마소는 가충의 의견을 따라 종회를 사도로 봉하고, 위관에게 두 길의 군마를 감독하게 하며 친필 서신을 주어 종회와 함께 등애를 살펴 변고를 막게 한다. 연의 제118회 §23–24 · 27

제119회에서 종회는 '등애가 위관을 죽인다면 모반하려는 뜻이 확실해진다'는 강유의 계책에 따라, 위관에게 수십 명을 이끌고 성도로 들어가 등애 부자를 잡아들이게 한다. 수하들이 말리지만 위관은 따로 계책이 있다며, '조서를 받들어 등애를 잡아들이되 그 밖의 사람들은 묻지 않는다'는 격문 이삼십 통을 먼저 띄운다. 닭이 울 무렵 격문을 본 등애의 부장들이 모두 와서 위관의 말 앞에 엎드려 절하고, 위관은 수십 명을 이끌고 부중에 뛰어들며 '조서를 받들어 등애 부자를 잡아들인다'고 외치고, 놀라 침상에서 굴러떨어진 등애를 무사들을 꾸짖어 수레에 묶게 한다. 나와서 묻던 아들 등충도 붙잡혀 수레에 묶인다. 연의 제119회 §1–3

같은 회에서 종회가 곽태후의 유조를 거짓으로 내세워 장수들을 궁중에 가두자, 갇힌 호열은 구건의 도움으로 심복을 시켜 아들 호연에게 밀서를 보낸다. 호연이 정월 열여드레 한낮에 안으로 쳐들어갈 계책을 내자, 감군 위관은 이를 몹시 기뻐하며 인마를 정돈하고 구건을 시켜 호열에게 전하게 한다. 종회와 강유가 죽은 뒤 위관은 모든 군사에게 저마다 영채로 돌아가 왕명을 기다리라고 한다. 연의 제119회 §10 · 12–14 · 17–18

등애 휘하의 사람들이 등애를 빼앗으러 뒤쫓아 갔다는 말을 듣자, 위관은 '등애를 잡은 것은 나다. 이제 만약 그를 살려 둔다면 나는 몸을 묻을 땅도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한다. 지난날 등애에게 죽을 뻔했으니 그 원한을 갚겠다는 호군 전속에게 크게 기뻐하며 군사 5백을 이끌고 면죽으로 뒤쫓게 하고, 전속은 함거에서 풀려난 등애를 한칼에 벤다. 열흘쯤 뒤 가충이 먼저 이르러 백성을 안정시키고, 위관은 성도에 남아 지키게 되며 후주는 낙양으로 옮겨진다. 연의 제119회 §18–19 · 22

연의와 다른 점

제갈서: 연의 제117회에서는 위관이 제갈서를 베려는 종회를 말리고, 종회는 제갈서를 함거에 실어 낙양으로 보낸다. 정사 종회전에서는 종회가 군권을 독차지하려고 제갈서가 겁을 먹어 나아가지 않는다고 몰래 아뢰어, 제갈서가 함거로 불려 돌아갔다. 이 대목에 위관은 나오지 않는다. 연의 제117회 §4정사 위지 권28 §114

문왕의 친필: 연의 제118회에서는 사마소가 먼저 위관에게 친필 서신을 보내고, 위관이 조서를 받은 등애에게 그 서신을 꺼내 준다. 정사 등애전에서는 문왕이 감군 위관을 시켜 등애를 타일렀다고만 적고, 문왕의 친필 명령은 뒤에 위관이 등애의 군을 타일러 무기를 내려놓게 할 때 나온다. 연의 제118회 §23–24정사 위지 권28 §79 · 121

등애를 잡은 경위: 연의 제119회에서는 종회가 '등애가 위관을 죽이면 모반이 확실해진다'는 강유의 계책에 따라 위관을 보내고, 위관은 격문을 띄운 뒤 새벽에 부중에 뛰어들어 등애 부자를 묶게 한다. 정사에서는 등애가 명을 따르지 않을까 두려워한 문왕이 종회에게 함께 성도로 진군하게 했고, 종회보다 앞서간 위관이 문왕의 친필 명령으로 등애의 군을 타이르자 군이 모두 무기를 내려놓았다. 강유의 계책과 격문은 없다. 연의 제119회 §1–3정사 위지 권28 §121

종회의 난: 연의 제119회에서 위관은 호연의 계책을 기뻐하며 인마를 정돈하고, 구건을 시켜 호열에게 전하게 한다. 정사 종회전에서는 호열이 친병과 아들에게 거짓 소식을 보내고, 18일 한낮 호열의 군사와 아들이 북을 울리며 나선 것을 시작으로 여러 군이 들고일어난다. 이 대목에 위관은 나오지 않는다. 연의 제119회 §14정사 위지 권28 §124–128

등애를 벤 일: 연의 제119회에서는 위관이 등애를 살려 두면 몸을 묻을 땅이 없다고 말하고, 원한을 갚겠다는 전속에게 군사 5백을 주어 뒤쫓게 한다. 정사 등애전은 위관이 전속 등을 보내 등애를 치게 해 면죽 서쪽에서 베었다고만 적고, 위관의 말과 전속의 원한, 군사의 수는 적지 않았다. 연의 제119회 §18–19정사 위지 권28 §81

그 뒤: 연의는 제119회에서 위관이 성도에 남아 지키게 된 뒤로 그를 다시 그리지 않는다. 정사에서는 함희 원년(264) 6월 진서장군 위관이 옹주의 병사가 성도현에서 얻은 옥벽과 옥인을 올렸고, 아버지 위기의 전기는 그가 함희 연간에 진서장군이 되었다고 적는다. 연의 제119회 §22정사 위지 권4 §129정사 위지 권21 §48

3KDEX 집필(검수 전) — 문단 끝의 표지는 근거가 된 정사 권 · 연의 회의 그 절로 이어진다.

능력치

정사(진수 『삼국지』 본문)의 점수가 기준입니다. 연의가 같은 인물을 어떻게 다시 그렸는지 항목마다 견주고, 두 원전의 근거로 차이를 설명합니다.

통솔무력지력정치매력덕처세문예언변용인
정사(실선) 대 연의(점선)
  • 통솔5052+2
  • 무력3538+3
  • 지력6268+6
  • 정치4540−5
  • 매력4545±0
  • 덕3030±0
  • 처세5862+4
  • 문예4035−5
  • 언변6050−10
  • 용인4040±0
정사 · 연의 점수와 차이 (연의 − 정사 · 왼쪽 = 연의가 깎음 · 오른쪽 = 연의가 높임)

연의가 만든 능력치 — 정사와 다른 곳 차이 10점 이상

비슷한 곳 9개 — 근거 보기

정사 연의 추정 직접 기록이 없어 행적으로 매긴 값(근거 등급 C)

3KDEX 채점 — 정사는 진수 『삼국지』 본문, 연의는 『삼국지연의』 120회 본문이 근거다. 근거 표지를 누르면 원문 리딩의 그 절로 간다.

연의 등장 회차 (4회)

등장미등장 회차 목록 →

소속 이력 소속 변경 1회

  1. 진 (265~) 계승 · 정사 · 정사 권21 「爲晉尚書令、司空、太保」 · 기간 연도는 3KDEX 지정(추정) · 검수 v38
  2. 위 (~265) · 정사 · 정사 권21 「弱冠爲尚書郎」 · 검수 v38

가족

부모위기 정사

Wikidata 역사·연의 인물 항목 기준(정의서 16). 추정 배지가 없는 관계는 정사 원문에서도 확인한 것.

관련 사건 (2)

위키백과 정보상자·원문 핵심어 자동 대조(추정)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