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희 昌豨

정사연의 Chang Xi창패昌霸

프로필
직업정연무장소속
등장정연수록
사망 원인정처형 추정
존재실존언급정12회

인물 소개

창희는 한나라 말 태산 일대에서 무리를 모은 사람이다. 정사에는 따로 전이 없고 무제기와 장료·우금·하후연·장패·여건의 전기에 나오며, 선주전에는 창패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무제기는 그를 장패·손관·오돈·윤례와 함께 저마다 무리를 모은 태산의 무리로 적는다. 정사 위지 권1 §49정사 촉지 권2 §16

건안 5년(200) 정월 조조가 유비를 격파했을 때 유비 편에 섰다가 공격을 받아 깨졌다. 원소가 격파된 뒤에는 동해에서 하후연·장료에게 포위되었다가 장료의 설득으로 항복했다. 기주가 평정된 뒤 다시 배반했다가 옛 벗 우금에게 항복했으나, 우금은 포위된 뒤에 항복한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조조의 명령을 들어 그의 목을 베었다. 정사 위지 권1 §58–59정사 위지 권17 §3–4 · 34–35

이 소식을 들은 조조는 '창희가 항복하면서 내게 오지 않고 우금에게 귀순했으니, 어찌 운명이 아니겠는가'라고 탄식했다. 연의에는 제18회에 여포와 손잡은 태산의 도적으로 처음 나와 120회 가운데 4회에 등장하며, 이름이 회목에 든 회는 없다. 정사 위지 권17 §35연의 제18회 §23

정사 기록

무제기에 따르면 건안 3년(198) 조조가 하비에서 여포와 진궁을 사로잡아 죽였을 때, 태산의 장패·손관·오돈·윤례·창희는 저마다 무리를 모으고 있었다. 여포가 유비를 격파했을 때 장패 등은 모두 여포를 따랐다. 여포가 패하자 조조는 장패 등을 잡아 후하게 대우하고, 청주와 서주 두 주의 바다에 붙은 지역을 떼어 이들에게 맡겼다. 정사 위지 권1 §48–49

선주전은 그를 창패라는 이름으로 적는다. 유비가 서주자사 차주를 죽이고 관우에게 하비를 지키게 한 뒤 소패로 돌아가자, 동해의 창패가 반란을 일으켰다. 군현 가운데 조조를 배반하고 유비 편에 선 곳이 많아 무리가 수만 명에 이르렀고, 유비는 손건을 보내 원소와 손을 잡았다. 조조가 유대와 왕충을 보내 유비를 쳤으나 이기지 못했다. 정사 촉지 권2 §16

건안 5년(200) 봄 정월, 조조는 몸소 동쪽으로 유비를 쳐서 격파했다. 유비는 원소에게 달아났고, 하비에 주둔하던 관우도 항복했다. 무제기는 창희가 배반하여 유비 편에 섰으므로 조조가 또 그를 공격하여 깨뜨렸다고 적는다. 정사 위지 권1 §58–59

여건전에 따르면 양분교위 두송이 거느린 백성 경모 등이 난을 일으켜 창희와 내통했다. 조조는 여건에게 두송을 대신하게 했고, 여건은 경모 등의 우두머리와 함께 악행을 저지른 무리 수십 명을 꾀어 술과 음식을 내린 뒤, 그들이 취하자 숨겨 둔 장사들을 시켜 모두 쳐 죽였다. 남은 무리를 어루만지자 여러 도적이 비로소 평정되었다. 이 전기는 그 일이 언제였는지 밝히지 않는다. 정사 위지 권18 §41–42

장료전에 따르면 원소가 격파된 뒤 장료는 하후연과 함께 동해에서 창희를 포위했다. 몇 달이 지나 군량이 다 떨어져 군사를 돌리자는 의논이 나오자, 장료는 하후연에게 창희가 포위망을 돌 때마다 자기를 눈여겨보고 그쪽에서 쏘는 화살도 드물어졌으니 계책을 두고 망설이는 것이라며, 그를 꾀어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다고 했다. 장료가 사람을 시켜 공의 명을 전하겠다고 하자 창희는 과연 내려와 장료와 이야기했고, 조조는 신묘한 무용을 갖추고 덕으로 사방을 품으니 먼저 귀부하는 자는 큰 상을 받으리라는 장료의 말에 항복을 허락했다. 정사 위지 권17 §3–4

장료는 홀몸으로 삼공산에 올라 창희의 집에 들어가 그 처자에게 절했다. 창희는 크게 기뻐하며 장료를 따라 조조에게 나아갔다. 조조는 창희를 돌려보내고 장료에게 '이는 대장이 할 일이 아니다'라고 꾸짖었다. 장료는 명공의 위엄과 신의가 사해에 드러나 있고 자신이 그 뜻을 받들고 갔으니, 창희가 감히 해치지 못하리라 여겼다고 사죄했다. 정사 위지 권17 §4–5

하후연전은 창희가 반란을 일으키자 우금을 보내 쳤으나 함락하지 못했고, 다시 하후연을 보내 우금과 힘을 합치게 해 창희의 진영 10여 곳을 항복시켰으며, 창희는 우금에게 가서 항복했다고 적는다. 장패전에도 장패가 우금과 함께 창희를 토벌했다는 기록이 있다. 정사 위지 권9 §15정사 위지 권18 §25

우금전에 따르면 기주가 평정된 뒤 창희가 다시 배반하자 우금을 보내 정벌하게 했다. 우금이 서둘러 진격해 공격하니, 우금과 옛정이 있던 창희는 우금에게 와서 항복했다. 장수들은 창희가 이미 항복했으니 조조에게 보내야 한다고 여겼으나, 우금은 포위된 뒤에 항복한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공의 한결같은 명령을 들며 '창희가 비록 옛 벗이라 하나, 내가 절개를 잃을 수 있겠소'라고 했다. 우금은 몸소 나가 창희와 영결하고, 눈물을 떨구며 그의 목을 베었다. 정사 위지 권17 §34–35

이때 조조는 순우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창희가 항복하면서 내게 오지 않고 우금에게 귀순했으니, 어찌 운명이 아니겠는가'라고 탄식했고, 그 뒤로 우금을 더욱 중히 여겼다. 동해가 평정되자 우금은 호위장군이 되었다. 무제기는 조조가 건안 11년(206) 가을 8월 해적 관승을 치러 순우에 이르렀고, 이듬해 봄 2월 순우에서 업으로 돌아왔다고 적는다. 진수의 본문은 창희가 죽은 해를 밝히지 않는다. 정사 위지 권17 §35–36정사 위지 권1 §95 · 97

연의 묘사

연의 제18회에서 진궁이 붙잡은 조조의 사자에게서 유비의 답장을 본 여포는 크게 욕하며 사자의 목을 벤다. 그러고는 먼저 진궁과 장패에게 태산의 도적 손관·오돈·윤례·창희와 손잡고 동쪽으로 산동 연주의 여러 군을 치게 한다. 연의 제18회 §22–23

제19회에서 조조가 몸소 대군을 이끌고 유비와 함께 여포를 치러 나서자, 소관 가까이에서 태산의 도적 손관·오돈·윤례·창희가 군사 3만여를 이끌고 길을 막는다. 조조가 허저에게 맞서 싸우게 하자 네 장수가 일제히 말을 몰고 나오지만, 힘을 다해 죽기로 싸우는 허저를 당해 내지 못하고 저마다 패해 달아난다. 조조는 기세를 타 소관까지 쫓아간다. 연의 제19회 §9–10

제20회에서 여포가 죽은 뒤 조조는 장료를 시켜 장패를 달래게 하고, 항복한 장패는 다시 손관·오돈·윤례를 불러 달래어 항복하게 한다. 그러나 창희만은 귀순하려 하지 않는다. 조조는 장패를 낭야상으로 삼고 손관 등에게도 벼슬을 더해 청주·서주의 바닷가 땅을 지키게 한다. 연의는 그 뒤 창희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지 않는다. 연의 제20회 §2

제97회에서 제갈량이 양의를 시켜 후주에게 올린 표문은 조조의 실책을 들면서 '조조는 다섯 번 창패를 쳤으나 함락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연의 제97회 §8 · 11

연의와 다른 점

여포와 손잡은 일: 연의 제18~19회에서 창희는 여포의 명을 받은 진궁·장패와 손잡고 연주를 치다가, 소관 가까이에서 허저에게 패한다. 정사 무제기는 여포가 유비를 격파했을 때 장패 등이 모두 여포를 따랐다고만 적는다. 연의 제18회 §23연의 제19회 §10정사 위지 권1 §49

여포가 죽은 뒤: 연의 제20회에서는 장패가 손관·오돈·윤례를 달래 항복시키지만 창희만은 귀순하지 않는다. 정사 무제기는 여포가 패하자 장패 등을 잡아 후하게 대우하고 청주·서주의 바닷가 지역을 맡겼다고 적을 뿐, 창희가 따르지 않았다는 말은 없다. 연의 제20회 §2정사 위지 권1 §49

유비 편에 선 일: 정사 선주전에서는 유비가 차주를 죽이고 소패로 돌아가자 동해의 창패가 반란을 일으켜 많은 군현이 유비 편에 섰고, 무제기에서는 건안 5년(200) 조조가 유비를 격파한 뒤 유비 편에 선 창희를 또 공격해 깨뜨렸다. 연의에서 창희가 나오는 제18~20회와 제97회에는 이 일이 없다. 정사 촉지 권2 §16정사 위지 권1 §59연의 제20회 §2연의 제97회 §11

장료의 설득: 정사 장료전에서는 장료가 하후연과 함께 동해에서 창희를 포위하고, 홀몸으로 삼공산의 창희 집에 올라 그 처자에게 절한 끝에 항복을 받아 낸다. 연의 제20회에서 장료가 달래는 사람은 장패이고, 창희는 끝내 귀순하지 않는다. 정사 위지 권17 §3–5연의 제20회 §2

죽음: 연의는 창희가 어떻게 되었는지 적지 않는다. 정사 우금전에서는 기주가 평정된 뒤 다시 배반했다가 옛 벗 우금에게 항복했으나, 포위된 뒤에 항복한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명령에 따라 우금에게 목이 베였다. 연의 제20회 §2정사 위지 권17 §34–35

다섯 번의 공격: 연의 제97회의 표문은 조조가 다섯 번 창패를 쳤으나 함락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진수 본문에서는 조조가 유비 편에 선 창희를 공격해 깨뜨렸고, 창희는 장료와 하후연의 포위 끝에 항복했으며, 마지막에는 우금에게 항복했다가 베였다. 연의 제97회 §11정사 위지 권1 §59정사 위지 권17 §4 · 34–35

3KDEX 집필(검수 전) — 문단 끝의 표지는 근거가 된 정사 권 · 연의 회의 그 절로 이어진다.

능력치

정사(진수 『삼국지』 본문)의 점수가 기준입니다. 연의가 같은 인물을 어떻게 다시 그렸는지 항목마다 견주고, 두 원전의 근거로 차이를 설명합니다.

통솔무력지력정치매력덕처세문예언변용인
정사(실선) 대 연의(점선)
  • 통솔5535−20
  • 무력4532−13
  • 지력3835−3
  • 정치3331−2
  • 매력4838−10
  • 덕2040+20
  • 처세2540+15
  • 문예3131±0
  • 언변3833−5
  • 용인3333±0
정사 · 연의 점수와 차이 (연의 − 정사 · 왼쪽 = 연의가 깎음 · 오른쪽 = 연의가 높임)

연의가 만든 능력치 — 정사와 다른 곳 차이 10점 이상

처세정25연40추정 +15

정포위된 뒤에 항복했다가 우금에게 처형됨위지 권17 §35

연직접 기록 없음 — 장패의 권유에도 귀순하지 않음으로 추정제20회 §2

무력정45추정연32 −13

정직접 기록 없음 — 농성 행적으로 추정위지 권17 §4

연네 장수가 함께 허저를 당해 내지 못함제19회 §10

비슷한 곳 5개 — 근거 보기
  • 지력정38추정연35추정 −3

    정직접 기록 없음 — 계책을 두고 망설인 행적으로 추정위지 권17 §4

    연직접 기록 없음 — 태산의 도적 장수로 추정제18회 §23

  • 정치정33추정연31추정 −2

    정직접 기록 없음 — 반란 세력 우두머리로 추정위지 권9 §15

    연직접 기록 없음 — 도적 장수로 추정제18회 §23

  • 문예·학술정31추정연31추정 ±0

    정직접 기록 없음 — 무장으로 추정위지 권9 §15

    연직접 기록 없음 — 도적 장수로 추정제18회 §23

  • 언변·외교정38추정연33추정 −5

    정직접 기록 없음 — 장료와 담판한 행적으로 추정위지 권17 §4위지 권17 §5

    연직접 기록 없음 — 행적으로 추정제18회 §23

  • 안목·용인정33추정연33추정 ±0

    정직접 기록 없음 — 행적으로 추정위지 권9 §15

    연직접 기록 없음 — 행적으로 추정제18회 §23

정사 연의 추정 직접 기록이 없어 행적으로 매긴 값(근거 등급 C)

3KDEX 채점 — 정사는 진수 『삼국지』 본문, 연의는 『삼국지연의』 120회 본문이 근거다. 근거 표지를 누르면 원문 리딩의 그 절로 간다.

연의 등장 회차 (4회)

등장미등장 회차 목록 →

관련 사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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