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소 孫韶
인물 소개
손소는 자가 공례이다. 큰아버지 손하는 본래 성이 유씨였는데 손책에게 손씨 성을 받았다. 건안 9년(204) 손익이 해를 입은 뒤 손하마저 살해되자, 손소는 열일곱 살에 손하의 남은 무리를 거두어 경성을 지켰고, 손권에게 인정받아 그 부곡을 이어 거느렸다. 정사 오지 권6 §40 · 42–43정사 오지 권2 §8
광릉태수·편장군을 거쳐, 손권이 오왕이 되자 양위장군·건덕후가 되었고 손권이 황제를 칭하자 진북장군이 되었다. 수십 년 동안 변경의 장수로 있으며 척후를 멀리 내보내 패하는 일이 드물었고, 적오 4년(241)에 죽었다. 정사 오지 권6 §44 · 46
진수는 종실전의 평에서 이 손씨들이 혹은 변경에 자리 잡아 지키며 그 임무를 감당해 영예를 욕되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 연의에는 제7회에 손견이 양자로 들인 유씨 집안의 아들로 처음 나와 120회 가운데 3회에 등장하며, 이름이 회목에 든 회는 없다. 제86회에서는 서성의 명을 어기고 강을 건너 조비를 친다. 정사 오지 권6 §52연의 제7회 §30연의 제86회 §38 · 44
정사 기록
손소는 자가 공례이다. 큰아버지 손하는 자가 백해로, 본래 성은 유씨이고 역시 오 사람이다. 손책이 손하를 아껴 손씨 성을 내려 주고 족보에 올렸으며, 손하는 뒤에 장군이 되어 경성에 주둔했다. 정사 오지 권6 §40
앞서 손권이 오군태수 성헌을 죽였을 때, 성헌이 효렴으로 천거했던 규람과 대원은 산속으로 달아나 숨었다. 손익이 단양태수가 되자 두 사람을 예를 갖추어 불러들여, 규람은 대도독으로 병사를 감독하고 대원은 군승이 되었다. 건안 9년(204) 손익이 측근에게 해를 입자, 손하는 완릉으로 말을 달려가 규람과 대원을 꾸짖었다. 두 사람은 손하를 죽이고 북쪽으로 사람을 보내 양주자사 유복을 맞아들이려 했으나, 마침 손익의 휘하 서원·손고·부영 등이 규람과 대원을 죽였다. 정사 오지 권6 §41–42정사 오지 권2 §8
손소는 열일곱 살에 손하의 남은 무리를 거두고 경성을 수리하며, 망루를 세우고 무기와 장비를 손질해 적을 막을 채비를 했다. 변란을 듣고 초구에서 돌아오던 손권이 밤에 경성 아래에 진을 치고 시험 삼아 공격해 놀라게 하자, 병사들이 모두 성벽에 올라 격문을 돌려 경계를 갖추고, 함성이 땅을 울리며 성 밖의 사람들에게 꽤 활을 쏘았다. 손권이 사람을 보내 사정을 알린 뒤에야 그쳤다. 정사 오지 권6 §43
이튿날 손권은 손소를 만나 보고 그를 매우 뛰어나게 여겼다. 곧 승렬교위에 임명해 손하의 부곡을 거느리게 하고, 곡아·단도 두 현을 식읍으로 주며 스스로 장리를 두게 하니, 모두 손하의 옛 예와 같았다. 정사 오지 권6 §43
손소는 뒤에 광릉태수·편장군이 되었고, 손권이 오왕이 되자 양위장군으로 옮기고 건덕후에 봉해졌다. 위의 조휴·장료·장패 등이 쳐들어오자, 여범은 서성·전종·손소 등을 거느리고 수군으로 동구에서 조휴 등을 막았다. 손권이 황제를 칭하자 손소는 진북장군이 되었다. 정사 오지 권6 §44정사 오지 권11 §37
손소는 수십 년 동안 변경의 장수로 있으면서 사졸을 잘 보살펴 그들이 목숨을 걸고 힘쓰게 했다. 늘 국경을 경계하고 척후를 멀리 내보내는 것을 임무로 삼아 적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대비했으므로 패하는 일이 드물었다. 청주·서주·여남·패에서 귀순해 오는 이가 꽤 많았고, 회남의 강가에 있던 둔영과 척후는 모두 병사를 거두어 멀리 옮겨 가, 서주·사수·장강·회수 일대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저마다 수백 리였다. 정사 오지 권6 §44
손권이 서쪽으로 가서 무창에 도읍한 뒤로 손소는 십여 년 동안 알현하지 못하다가, 손권이 건업으로 돌아오자 비로소 조회했다. 손권이 청주·서주의 여러 둔영의 요충, 멀고 가까운 곳의 병력과 말의 많고 적음, 위나라 장수들의 이름을 물으니 손소는 모두 자세히 알고 있어 묻는 것마다 대답했다. 키가 여덟 자이고 몸가짐과 풍채가 매우 우아했다. 손권은 '내가 오랫동안 공례를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까지 나아졌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며 기뻐하고, 유주목을 겸하게 하고 가절을 더했다. 정사 오지 권6 §45
가화 3년(234) 여름 5월, 손권은 육손·제갈근 등을 강하와 면구에 주둔시키고 손소·장승 등을 광릉과 회양으로 향하게 한 뒤, 몸소 대군을 이끌고 합비 신성을 에워쌌다. 위의 명제가 몸소 수군을 이끌고 동쪽으로 나서자 그가 수춘에 이르기 전에 손권은 물러나 돌아왔고, 손소도 군사를 거두었다. 위의 명제기는 이때 손권이 육의(육손)와 손소에게 각각 1만여 명을 거느리고 회수와 면수로 들어가게 했다고 적었다. 정사 오지 권2 §77–78정사 위지 권3 §37–38
손소는 적오 4년(241)에 죽었다. 아들 손월이 뒤를 이어 우장군에 이르렀고, 손월의 형 손해는 무위대장군·임성후로서 손월을 대신해 경하독이 되었다. 손해의 아우 손이는 영군장군에 이르렀고, 손혁은 종정경, 손회는 무릉태수가 되었다. 천새 원년(276) 손해를 불러 궁하진 표기장군으로 삼았다. 앞서 영안의 도적 시단 등이 건업을 습격했을 때 손해가 두 마음을 품고 곧바로 토벌하러 오지 않았다는 말이 있어 손호가 여러 차례 따져 물었으므로, 늘 두려워하던 손해는 갑자기 부름을 받자 처자와 친병 수백 명을 거느리고 진에 귀순했다. 정사 오지 권6 §46–47
진수는 종실전의 평에서, 친족을 친애하는 은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도리라 하고, 이 여러 손씨들은 혹은 나라를 일으키는 첫 기틀을 도왔고 혹은 변경에 자리 잡아 지키며 그 임무를 능히 감당해 영예를 욕되게 하지 않았으므로 자세히 적었다고 했다. 정사 오지 권6 §52
연의 묘사
연의 제7회는 손견이 유표를 치러 나서는 대목에서 그의 집안을 소개하며, 손견이 유씨 집안의 아들 하나를 양자로 들였으니 이름은 소, 자는 공례라고 적는다. 연의 제7회 §29–30
제86회에서 위의 조비가 대군을 이끌고 오자, 손권은 서성을 안동장군으로 삼아 건업과 남서의 군마를 총괄하게 한다. 서성이 강기슭을 지킬 채비를 하자 오왕의 조카 손소가 나서서, 일찍 강을 건너 회남에서 적을 맞아 싸우자고 한다. 연의는 그를 벼슬이 양위장군으로 일찍이 광릉에서 수비를 맡았으며, 나이가 어리고 혈기가 넘쳐 담력과 용기가 대단한 인물로 그린다. 손소는 휘하 3천 군마로 강북에 가서 조비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고 거듭 고집하고, 서성은 노해 그를 끌어내 베게 한다. 연의 제86회 §31–34
부장의 급보를 듣고 달려온 손권이 손소를 구해 내고, 이 아이는 본디 성이 유씨이지만 형님께서 무척 아끼시어 손씨 성을 내려 주셨다며 서성에게 용서를 청한다. 손소는 절하여 사례하라는 말에도 '죽는다 해도 당신의 소견에는 따를 수 없다'고 외치고, 손권은 그를 꾸짖어 물리치며 서성에게 앞으로 다시 쓰지 말라고 한다. 그날 밤 손소는 부하 정병 3천을 이끌고 몰래 강을 건너고, 서성은 정봉에게 비밀 계책을 주어 뒤따라 호응하게 한다. 연의 제86회 §34–38
서성이 세운 가짜 성에 놀란 조비가 군사를 돌려, 용주가 회수로 들어가려 할 때 손소가 비스듬히 쳐들어와 위군은 태반을 잃는다. 손소와 정봉은 말과 수레, 배와 병기를 셀 수 없이 빼앗는다. 제102회에서 손권은 제갈량의 편지를 가져온 비의에게, 손소와 장승 등에게 광릉으로 군사를 내어 회양 등지를 치게 하겠다고 말한다. 연의 제86회 §41–42 · 44–45연의 제102회 §22–23
연의와 다른 점
손씨 성을 얻은 사람: 연의 제7회는 손견이 유씨 집안의 아들 손소를 양자로 들였다 하고, 제86회에서는 손권이 형님이 손소를 아껴 손씨 성을 내려 주었다고 말하며, 서성은 그를 오왕의 조카로 여긴다. 정사에서 본래 성이 유씨이고 손책에게 손씨 성을 받아 족보에 오른 사람은 손소의 큰아버지 손하다. 연의 제7회 §30연의 제86회 §33 · 36정사 오지 권6 §40
나이: 연의 제86회는 손소를 나이가 어리고 혈기가 넘친다고 그린다. 정사에서 손소는 건안 9년(204)에 열일곱 살이었으니, 위 문제가 광릉에 온 황무 3년(224)에는 서른 살을 훌쩍 넘었다. 연의 제86회 §33정사 오지 권6 §43정사 오지 권2 §8 · 51
서성과의 다툼: 연의 제86회에서 손소는 서성의 명을 어겨 목이 베일 뻔하다가 손권의 청으로 살아난다. 정사의 서성전과 손소의 전기에는 이 일이 없다. 연의 제86회 §34–37정사 오지 권10 §86정사 오지 권6 §39–47
조비를 친 일: 연의 제86회에서 손소는 회수 어귀에서 조비가 탄 용주를 덮쳐 위군의 태반을 꺾는다. 진수 본문의 오주전은 황무 3년(224) 9월 위 문제가 광릉에 나와 큰 강을 바라보고 '저쪽에 사람이 있으니 도모할 수 없다'며 돌아갔다고 적고, 서성전은 서성이 세운 가짜 누각을 보고 문제가 군을 물렸다고 적을 뿐, 손소는 나오지 않는다. 연의 제86회 §44정사 오지 권2 §51정사 오지 권10 §86
가화 3년의 출병: 연의 제102회에서 손권은 비의가 가져온 제갈량의 편지를 받고 손소·장승을 광릉으로 내겠다고 한다. 정사 오주전에도 가화 3년(234) 5월 손소·장승 등이 광릉과 회양으로 향한 일이 있으나, 이때 제갈량이 무공으로 나와 손권이 위 명제가 멀리 나오지 못하리라 여겼다고 적을 뿐 편지는 나오지 않는다. 연의 제102회 §23정사 오지 권2 §77
그 뒤: 연의에서 손소는 제102회를 끝으로 나오지 않고 죽음도 적혀 있지 않다. 정사에서는 진북장군으로 유주목을 겸하고 가절을 받았으며, 적오 4년(241)에 죽었다. 연의 제102회 §23정사 오지 권6 §44–46
3KDEX 집필(검수 전) — 문단 끝의 표지는 근거가 된 정사 권 · 연의 회의 그 절로 이어진다.
능력치
정사(진수 『삼국지』 본문)의 점수가 기준입니다. 연의가 같은 인물을 어떻게 다시 그렸는지 항목마다 견주고, 두 원전의 근거로 차이를 설명합니다.
- 통솔7262−10
- 무력4570+25
- 지력6455−9
- 정치4833−15
- 매력7042−28
- 덕5538−17
- 처세5830−28
- 문예3831−7
- 언변4033−7
- 용인4233−9
연의가 만든 능력치 — 정사와 다른 곳 차이 10점 이상
비슷한 곳 4개 — 근거 보기
정사 연의 추정 직접 기록이 없어 행적으로 매긴 값(근거 등급 C)
3KDEX 채점 — 정사는 진수 『삼국지』 본문, 연의는 『삼국지연의』 120회 본문이 근거다. 근거 표지를 누르면 원문 리딩의 그 절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