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략 留略
인물 소개
유략은 오의 장수다. 정사에는 따로 전이 없고, 오지 권3 삼사주전과 권19 제갈각의 기록에 이름이 나온다. 건흥 원년(252) 겨울 10월 태부 제갈각이 동흥에 큰 둑을 다시 쌓고 좌우에 두 성을 쌓자, 도위로서 동쪽 성을 지켰다. 위의 호준 · 제갈탄 등이 무리 7만으로 두 성을 쳤으나 성이 높고 험한 곳에 있어 갑자기 함락하지 못했고, 그해 12월 제갈각이 동흥에서 위군을 크게 깨뜨렸다. 정사 오지 권3 §4–5정사 오지 권19 §28–29
오봉 2년(255)에는 동해태수가 되었다. 진수 본문은 그의 자와 출신, 그 뒤의 행적과 죽음을 적지 않았고, 그에 대한 평도 없다. 연의에는 제108회에 동흥의 오른쪽 성을 지키는 오의 장수로 나오며, 120회 가운데 이 1회에만 등장하고 이름이 회목에 든 회는 없다. 정사 오지 권3 §11 · 4정사 오지 권19 §28연의 제108회 §13
정사 기록
제갈각의 기록에 따르면, 손권은 황룡 2년(230) 동흥에 둑을 쌓아 호수의 물을 막았으나, 뒤에 회남을 쳤다가 패했을 때 배를 안으로 들이는 데 둑을 쓴 뒤로 버려두고 다시 손보지 않았다. 제갈각은 건흥 원년(252) 10월 동흥에 무리를 모아 큰 둑을 다시 쌓고, 좌우로 산에 기대 둑을 끼고 성 두 개를 쌓아 각각 천 명을 남겨 전단과 유략에게 지키게 한 뒤 군사를 이끌고 돌아왔다. 삼사주전은 장군 전단이 서쪽 성을, 도위 유략이 동쪽 성을 지켰다고 적는다. 정사 오지 권19 §28정사 오지 권3 §4
위는 오의 군대가 자기 강토에 들어온 것을 모욕으로 여겨 부끄러워하고, 대장 호준 · 제갈탄 등에게 무리 7만을 이끌고 두 보루를 에워싸 둑을 무너뜨리게 했다. 삼사주전은 12월 위가 보병과 기병 7만으로 동흥을 에워싸게 하고, 장군 왕창(王昶)은 남군을 치고 관구검은 무창으로 향하게 했다고 적는다. 호준 등은 부교를 만들어 건너 둑 위에 진을 치고 군사를 나누어 두 성을 쳤으나, 성이 높고 험한 곳에 있어 갑자기 함락할 수 없었다. 정사 오지 권19 §28–29정사 오지 권3 §4
제갈각은 군사 4만을 일으켜 밤낮으로 달려가 구원하며, 장군 유찬(留贊) · 여거 · 당자 · 정봉(丁奉)을 선봉으로 보냈다. 날이 춥고 눈이 내리는데, 위의 장수들은 모여 술을 마시다가 유찬 등의 병사가 적고 갑옷을 벗은 채 투구와 칼 · 방패만 갖추고 맨몸으로 둑을 기어오르는 것을 보고 크게 비웃으며 군사를 정비하지 않았다. 오의 병사들이 올라가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마구 베자, 위군은 다투어 부교를 건너다 다리가 끊어져 물에 뛰어들고 서로 짓밟았다. 낙안태수 환가 등이 한꺼번에 죽고, 위의 전군독이 되어 있던 옛 배반자 한종도 베였다. 삼사주전은 이 싸움을 12월 무오일(서기 253년 초)의 일로 적는다. 정사 오지 권19 §29–30정사 오지 권3 §5
오봉 2년(255) 오는 위위 풍조에게 광릉에 성을 쌓게 하고, 장군 오양을 광릉태수로, 유략을 동해태수로 임명했다. 진수 본문에서 유략이 나오는 곳은 동흥의 성을 지킨 일과 이 임명뿐이며, 그의 자와 출신, 그 뒤의 행적과 죽음은 적혀 있지 않다. 정사 오지 권3 §11 · 4정사 오지 권19 §28
연의 묘사
연의 제108회에서 사마사는 오를 치려 하고, 사마소는 손권이 막 죽고 손량이 어리고 나약하니 그 틈을 탈 만하다고 한다. 이에 왕창 · 호준 · 관구검이 각각 군사 10만을 이끌고 세 길로 나아가고, 사마소가 대도독이 되어 세 길의 군마를 총괄한다. 그해 겨울 12월 사마소는 오가 큰 둑을 쌓고 좌우에 성 두 개를 쌓아 소호 뒤쪽을 막고 있는 동흥군이 가장 요긴한 곳이라며, 호준을 선봉으로 삼아 먼저 부교를 놓아 큰 둑을 차지하고 좌우의 두 성을 빼앗게 한다. 연의 제108회 §8–10
오의 태부 제갈각은 정봉에게 수군 3천을 주어 강을 따라 가게 하고, 여거 · 당자 · 유찬에게 각각 기병과 보병 1만을 이끌고 뒤따라 호응하게 한다. 그 사이 호준은 부교를 건너 둑 위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환가와 한종을 보내 두 성을 치게 하는데, 왼쪽 성은 오장 전단이, 오른쪽 성은 오장 유략이 지킨다. 두 성은 높고 가파르며 견고해 서둘러 쳐서는 떨어뜨릴 수 없고, 전단과 유략 두 사람은 위군의 기세가 큰 것을 보고 감히 나가 싸우지 못한 채 성을 죽기로 지킨다. 연의 제108회 §11–13
호준은 서당에 영채를 세우고, 큰 눈이 내리는 한겨울에 장수들과 술자리를 벌인다. 정봉은 군사들에게 갑옷과 투구를 벗고 짧은 칼만 차게 해 기슭에 올라 위군 영채로 베고 들어가, 한종을 베어 쓰러뜨리고, 칼을 던져 왼쪽 어깨를 맞힌 환가를 뒤쫓아 그 창으로 찌른다. 위군은 끊어진 부교 때문에 태반이 물에 빠져 죽고, 동흥에서 졌다는 소식을 들은 사마소 · 왕창 · 관구검도 군사를 거두어 물러간다. 연의에서 유략이 나오는 곳은 성을 지키는 이 장면뿐이다. 연의 제108회 §13–17
연의와 다른 점
관직: 연의 제108회에서 유략은 「오장」으로만 나온다. 정사 삼사주전에서 그는 동쪽 성을 지킬 때 도위였고, 오봉 2년(255)에는 동해태수가 되었다. 동해태수가 된 일은 연의에 없다. 연의 제108회 §13정사 오지 권3 §4 · 11
두 성을 친 위군: 연의 제108회에서는 사마소가 대도독이 되어 왕창 · 호준 · 관구검의 세 길 군사 각 10만을 총괄하고, 호준이 선봉으로 두 성을 친다. 정사에서는 삼소제기가 정남대장군 왕창, 정동장군 호준, 진남장군 관구검 등에게 조서를 내려 오를 치게 했다고 적고, 삼사주전과 제갈각의 기록은 제갈탄 · 호준 등이 무리 7만으로 동흥의 두 보루를 쳤다고 적는다. 이 대목들에 사마소는 나오지 않는다. 연의 제108회 §8–10정사 위지 권4 §34정사 오지 권3 §4정사 오지 권19 §28–29
성을 구한 싸움: 연의 제108회에서는 정봉이 수군 3천을 이끌고 먼저 기습해 한종을 베고 환가를 창으로 찌른다. 정사 제갈각의 기록에서는 제갈각이 군사 4만으로 구원하러 와서 유찬 · 여거 · 당자 · 정봉을 선봉으로 보냈고, 환가 등이 한꺼번에 죽었으며 한종도 베였다. 누가 두 사람을 죽였는지는 적혀 있지 않다. 연의 제108회 §11–12 · 16–17정사 오지 권19 §29–30정사 오지 권3 §5
3KDEX 집필(검수 전) — 문단 끝의 표지는 근거가 된 정사 권 · 연의 회의 그 절로 이어진다.
능력치
정사(진수 『삼국지』 본문)의 점수가 기준입니다. 연의가 같은 인물을 어떻게 다시 그렸는지 항목마다 견주고, 두 원전의 근거로 차이를 설명합니다.
- 통솔5048−2
- 무력4038−2
- 지력3840+2
- 정치4533−12
- 매력3838±0
- 덕4545±0
- 처세4042+2
- 문예3331−2
- 언변3331−2
- 용인3331−2
연의가 만든 능력치 — 정사와 다른 곳 차이 10점 이상
비슷한 곳 9개 — 근거 보기
정사 연의 추정 직접 기록이 없어 행적으로 매긴 값(근거 등급 C)
3KDEX 채점 — 정사는 진수 『삼국지』 본문, 연의는 『삼국지연의』 120회 본문이 근거다. 근거 표지를 누르면 원문 리딩의 그 절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