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서 諸葛緒

정사연의 위 Zhuge Xu诸葛绪

프로필
직업정연무장 · 옹주자사소속위
등장정연수록
존재실존언급정9회

인물 소개

제갈서는 위나라에서 태산태수와 옹주자사를 지냈다. 정사에는 따로 전이 없고 자와 출신지도 적혀 있지 않다. 관구검이 난을 일으킨 뒤 오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려 하자, 등애의 명을 받아 여장에서 막아 싸워 적을 달아나게 했다. 정사 위지 권28 §62

경원 4년(263) 위가 촉을 칠 때 옹주자사로서 여러 군 3만여 명을 거느리고 강유의 돌아갈 길을 끊는 일을 맡았으나, 교두를 지나가는 강유를 하루 차이로 놓쳤다. 등애가 음평에서 샛길로 함께 가자고 하자 본래의 조서에 없다며 거절하고 종회와 합류했는데, 군권을 독차지하려던 종회가 그를 두고 겁을 먹어 나아가지 않는다고 몰래 아뢰어 함거로 불려 돌아갔다. 정사 위지 권28 §103 · 68 · 113–114

진수는 권28의 평에서 그를 말하지 않았다. 연의에는 제116회에 등애가 불러 모은 옹주자사로 처음 나와 120회 가운데 2회에 등장하며, 회목에 이름이 오른 회는 없다. 정사 위지 권28 §140연의 제116회 §6

정사 기록

고귀향공이 즉위한 뒤 관구검이 난을 일으켰다가 패하고 문흠이 오나라로 달아나자, 오나라 대장군 손준 등이 10만 무리라 일컬으며 강을 건너려 했다. 진동장군 제갈탄은 등애를 보내 비양을 차지하게 했으나, 등애는 적과 멀리 떨어져 요충지가 아니라며 부정으로 옮겨 주둔하고, 태산태수 제갈서 등을 보내 여장에서 막아 싸우게 하여 마침내 적을 달아나게 했다. 정사 위지 권28 §62

경원 4년(263) 여름 5월 조서가 내려, 정서장군 등애는 여러 군을 감독해 감송과 답중으로 가서 강유를 사로잡고, 옹주자사 제갈서는 여러 군을 감독해 무도와 고루로 가서 앞뒤에서 몰아쳐 토벌하게 했다. 강유를 사로잡으면 동서로 나란히 진격해 파촉을 쓸어 없앤다는 것이었다. 진서장군 종회에게는 낙곡을 거쳐 촉을 치게 했다. 정사 위지 권4 §123–125

그해 가을 조서를 내려 등애와 제갈서가 각각 여러 군 3만여 명을 거느리게 하니, 등애는 감송과 답중으로 나아가 강유를 붙잡아 두고, 제갈서는 무가와 교두로 나아가 강유의 돌아갈 길을 끊게 했다. 대장군 사마소가 모두 지휘하고 절도를 내렸으며, 종회는 10여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야곡과 낙곡으로 나누어 들어갔다. 종회가 촉에 보낸 격문도 정서·옹주·진서의 여러 군이 다섯 길로 나란히 나아간다고 했다. 촉의 후주전은 이해 여름 위가 정서장군 등애, 진서장군 종회, 옹주자사 제갈서에게 명해 여러 길로 함께 공격하게 했다고 적었다. 정사 위지 권28 §67 · 103 · 107정사 촉지 권3 §43

촉에서는 좌거기장군 장익과 보국대장군 동궐 등을 양안관 입구로 보내 여러 진지를 밖에서 돕게 했는데, 이들은 음평에 이르렀을 때 위의 장수 제갈서가 건위로 향한다는 소식을 듣고 머물러 기다렸다. 정사 촉지 권14 §44

강유는 종회의 여러 군이 이미 한중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물러났다. 양흔 등에게 강천구에서 패한 강유는, 옹주 군이 이미 길을 막고 교두에 주둔했다는 말을 듣자 공함곡에서 북쪽 길로 들어가 옹주 군의 뒤로 나가려 했다. 제갈서는 이를 듣고 30리를 물러났다. 강유는 북쪽 길로 30여 리를 들어갔다가 제갈서의 군이 물러났다는 말을 듣고 곧 되돌아와 교두를 지나갔다. 제갈서가 달려가 강유를 끊으려 했으나 하루 차이로 미치지 못했다. 정사 위지 권28 §68

등애는 강유를 쫓아 음평에 이르러, 정예를 가려 뽑아 한덕양에서 강유(江由)와 좌담의 길로 들어가 면죽에 이르고 성도로 나아가려 하면서 제갈서와 함께 가고자 했다. 제갈서는 본래 받은 지시가 강유(姜維)를 가로막는 것이고 서쪽으로 가는 것은 본래의 조서에 없다 하여, 군을 이끌고 백수로 나아가 종회와 합류했다. 정사 위지 권28 §113

종회와 제갈서의 군은 검각으로 향했다. 종회는 군권을 독차지하려고 제갈서가 겁을 먹어 나아가지 않는다고 몰래 아뢰었고, 제갈서는 함거로 불려 돌아갔다. 그의 군사는 모두 종회에게 속했다. 진수 본문은 그 뒤 제갈서의 일을 적지 않았고, 권28의 평에서도 그를 말하지 않았다. 정사 위지 권28 §114 · 140

연의 묘사

연의 제116회에서 농서에 있던 등애는 촉을 치라는 조서를 받자 사마망에게 강인을 막게 하고, 옹주자사 제갈서, 천수태수 왕기(王頎), 농서태수 견홍, 금성태수 양흔에게 사람을 보내 저마다 거느린 군사를 이끌고 와서 명령을 듣게 한다. 종회의 격문이 이르자 등애는 제갈서에게 군사 1만 5천을 이끌고 먼저 강유가 돌아갈 길을 끊게 한다. 연의 제116회 §6 · 8

같은 회에서 강유는 등애의 군사가 뒤에서 이르자 한중을 되찾으려 하지만, 옹주자사 제갈서가 이미 돌아갈 길을 끊었다는 보고를 받는다. 위군은 음평교 어귀에 주둔한다. 부장 영수의 계책에 따라 강유가 공함곡으로 들어가 옹주를 치는 척하자, 제갈서는 크게 놀라 '옹주는 내가 마땅히 지켜야 할 땅이니 잘못되면 조정에서 반드시 죄를 물을 것'이라며 대군을 거두어 남쪽 길로 옹주를 구하러 가고, 한 무리의 군사만 다리 어귀에 남긴다. 연의 제116회 §40–42

강유는 북쪽 길로 30리쯤 가다가 군사를 돌려 다리 어귀를 지키던 군사를 흩고 영채와 목책을 불태운다. 제갈서는 다리 어귀에서 불길이 일었다는 말을 듣고 다시 돌아오지만, 강유의 군사가 지나간 지 이미 반나절이 되어 감히 뒤쫓지 못한다. 연의 제116회 §42–43

제117회에서 강유가 검각에서 동궐과 이야기하는 사이 제갈서가 군사를 이끌고 관 아래까지 쳐들어온다. 강유는 군사 5천을 이끌고 내려와 위군 진중을 좌충우돌하고, 제갈서는 크게 패해 수십 리를 물러나 영채를 세운다. 연의 제117회 §1–2

검각에서 20리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운 종회에게 제갈서가 스스로 찾아와 죄를 청한다. 종회는 음평의 다리 어귀를 지켜 강유가 돌아갈 길을 끊으라 했는데 놓쳤고, 이제 또 명령도 받지 않고 멋대로 군사를 내어 패했다고 꾸짖는다. 제갈서는 강유가 옹주를 치는 척해 구하러 간 사이 빠져나갔고, 뒤쫓아 관 아래까지 갔다가 또 패했다고 답한다. 종회가 목을 베라고 하자 감군 위관은 제갈서가 등 정서장군이 거느리는 사람이니 죽이면 화합하는 기운이 상한다고 말리고, 여러 사람이 힘써 말린다. 종회는 제갈서를 함거에 실어 낙양으로 보내 진공의 처분에 맡기고, 그가 거느리던 군사를 자기 휘하에 거둔다. 이를 들은 등애는 크게 노한다. 연의 제117회 §3–5

연의와 다른 점

여장 싸움: 연의에서 제갈서는 제116회에 이미 옹주자사로 처음 나오며, 태산태수 때의 일은 없다. 정사 등애전에서는 관구검의 난 뒤 오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려 하자 태산태수 제갈서 등이 등애의 명으로 여장에서 막아 싸워 적을 달아나게 했다. 연의 제116회 §6정사 위지 권28 §62

지휘 관계: 연의 제116회에서는 등애가 조서를 받고 제갈서를 불러 명령을 듣게 하고 군사 1만 5천을 주어 길을 끊게 하며, 제117회에서 위관도 그를 등애가 거느리는 사람이라 한다. 정사에서는 조서가 등애와 제갈서에게 각각 여러 군 3만여 명을 거느리게 하여 저마다 다른 길을 맡겼고, 지휘와 절도는 대장군 사마소가 내렸다. 연의 제116회 §8연의 제117회 §4정사 위지 권28 §67 · 103

강유를 놓친 경위: 연의 제116회에서 제갈서는 옹주를 잃을까 놀라 남쪽 길로 옹주를 구하러 갔다가, 돌아왔을 때는 반나절이 지나 감히 뒤쫓지 못한다. 정사에서는 강유가 북쪽 길로 옹주 군의 뒤로 나가려 하자 제갈서가 30리를 물러났고, 강유가 되돌아 교두를 지나가자 달려가 끊으려 했으나 하루 차이로 미치지 못했다. 연의 제116회 §42–43정사 위지 권28 §68

등애의 제안: 연의에서 등애는 제갈서에게 함께 가자고 하지 않는다. 정사에서는 등애가 음평에서 샛길로 면죽과 성도로 나아가려 하며 제갈서와 함께 가고자 했으나, 제갈서는 서쪽으로 가는 것은 본래의 조서에 없다며 백수로 나아가 종회와 합류했다. 연의 제117회 §2–5정사 위지 권28 §113

검각 싸움: 연의 제117회에서 제갈서는 검각 관 아래까지 쳐들어갔다가 강유에게 크게 패한다. 정사에서는 종회와 제갈서의 군이 검각으로 향했다고만 적고, 제갈서가 강유와 싸워 패한 기록은 없다. 연의 제117회 §2정사 위지 권28 §114

함거에 실린 까닭: 연의 제117회에서는 제갈서가 스스로 죄를 청하자 종회가 명령 없이 군사를 내어 패했다며 베려다가, 위관 등의 만류로 함거에 실어 낙양으로 보낸다. 정사에서는 군권을 독차지하려던 종회가 제갈서가 겁을 먹어 나아가지 않는다고 몰래 아뢰어, 제갈서가 함거로 불려 돌아갔다. 연의 제117회 §3–4정사 위지 권28 §114

3KDEX 집필(검수 전) — 문단 끝의 표지는 근거가 된 정사 권 · 연의 회의 그 절로 이어진다.

능력치

정사(진수 『삼국지』 본문)의 점수가 기준입니다. 연의가 같은 인물을 어떻게 다시 그렸는지 항목마다 견주고, 두 원전의 근거로 차이를 설명합니다.

통솔무력지력정치매력덕처세문예언변용인
정사(실선) 대 연의(점선)
  • 통솔4835−13
  • 무력3838±0
  • 지력3025−5
  • 정치4240−2
  • 매력3838±0
  • 덕5245−7
  • 처세3030±0
  • 문예3533−2
  • 언변3538+3
  • 용인3838±0
정사 · 연의 점수와 차이 (연의 − 정사 · 왼쪽 = 연의가 깎음 · 오른쪽 = 연의가 높임)

연의가 만든 능력치 — 정사와 다른 곳 차이 10점 이상

비슷한 곳 9개 — 근거 보기
  • 무력정38추정연38추정 ±0

    정직접 기록 없음 — 무장 행적으로 추정위지 권28 §62

    연직접 기록 없음 — 무장으로 추정제117회 §2

  • 지력정30연25 −5

    정강유가 북쪽 길로 들어가자 30리 물러나 길을 내줌위지 권28 §68

    연옹주를 치는 척한 강유의 속임수에 다리 어귀를 비움제116회 §42제116회 §43

  • 정치정42추정연40추정 −2

    정직접 기록 없음 — 옹주자사 벼슬로 추정위지 권4 §125

    연직접 기록 없음 — 옹주자사 벼슬로 추정제116회 §8

  • 매력정38추정연38추정 ±0

    정직접 기록 없음 — 3만여 명을 거느린 기록위지 권28 §103

    연직접 기록 없음 — 1만 5천을 이끈 기록제116회 §8

  • 덕정52연45추정 −7

    정조서에 없는 서진을 따르지 않고 본래 지시를 지킴위지 권28 §113

    연직접 기록 없음 — 스스로 찾아와 죄를 청한 기록제117회 §3

  • 처세정30연30 ±0

    정종회의 참소로 겁을 먹었다 하여 함거로 불려 감위지 권28 §114

    연죄를 청하러 갔다가 함거로 낙양에 보내지고 군사를 빼앗김제117회 §3제117회 §4

  • 문예·학술정35추정연33추정 −2

    정직접 기록 없음 — 무장으로 추정위지 권28 §62

    연직접 기록 없음 — 무장으로 추정제116회 §8

  • 언변·외교정35추정연38 +3

    정직접 기록 없음 — 행적으로 추정위지 권28 §113

    연옹주를 잃을까 걱정했다고 변명했으나 종회가 받아들이지 않음제117회 §3

  • 안목·용인정38추정연38추정 ±0

    정직접 기록 없음 — 행적으로 추정위지 권28 §62

    연직접 기록 없음 — 행적으로 추정제116회 §8

정사 연의 추정 직접 기록이 없어 행적으로 매긴 값(근거 등급 C)

3KDEX 채점 — 정사는 진수 『삼국지』 본문, 연의는 『삼국지연의』 120회 본문이 근거다. 근거 표지를 누르면 원문 리딩의 그 절로 간다.

연의 등장 회차 (2회)

등장미등장 회차 목록 →

소속 이력

  1. 위 · 연의 · 연의 116회 「又遣雍州刺史诸葛绪」 · 검수 v38 · Wikidata 연의 인물 항목 소속(P27) · Q124695435

관련 사건 (1)

위키백과 정보상자·원문 핵심어 자동 대조(추정)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