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기 王頎

정사연의 후한 Wang Qi王颀

프로필
직업정연무장 · 월기교위소속후한
등장정연수록
출생정? 추정출신지
사망정192년 추정사망지정연장안현
사망 원인정피살 추정
존재실존언급정1회

인물 소개

왕기는 연의 제9회에 나오는 한 조정의 월기교위다. 이각과 곽사가 장안에 쳐들어와 군사를 풀어 크게 약탈할 때, 태상경 충불 · 태복 노규 · 대홍려 주환(周奐) · 성문교위 최열과 함께 모두 나라의 난리에 죽은 사람으로 이름이 나온다. 연의 제9회 §48

연의 120회 가운데 제9회 1회에만 등장하며, 이름이 회목에 든 회는 없다. 진수 본문에는 나오지 않고 배송지 주에만 기록이 있다. 진수 본문은 동탁이 죽은 뒤 이각 등이 장안성을 포위해 열흘 만에 함락시키고, 군사를 풀어 장안의 늙은이와 젊은이를 노략하고 모조리 죽였다고 적는다. 무제기는 동탁이 죽고 이각 · 곽사 등이 왕윤을 죽인 일을 초평 3년(192) 여름 4월 조에 적는다. 연의 제9회 §48정사 위지 권6 §19–21정사 위지 권1 §20–21

연의 묘사

연의 제9회에서 이각과 곽사가 싸움을 걸었다 물러나기를 되풀이하며 여포를 붙잡아 두는 사이, 장제와 번조의 군마가 장안을 침범한다. 돌아온 여포는 성 아래에서 싸워도 불리하고, 며칠 뒤 동탁의 잔당 이몽과 왕방이 성안에서 내응해 몰래 성문을 열자 네 갈래의 적군이 일제히 몰려 들어온다. 여포는 청쇄문 밖에서 왕윤에게 함께 관을 빠져나가자고 하지만, 왕윤은 나라를 안정시키지 못하면 몸을 바쳐 죽겠다며 끝내 가지 않고, 여포는 백여 기를 이끌고 원술에게 간다. 연의 제9회 §42–47

이각과 곽사는 군사를 풀어 크게 약탈하고, 태상경 충불, 태복 노규, 대홍려 주환(周奐), 성문교위 최열, 월기교위 왕기가 모두 나라의 난리에 죽는다. 적병이 내정을 에워싸자 시신들은 천자께 선평문에 올라 난을 멈추게 하라고 청하고, 이각 등은 누런 일산을 바라보고 군사들을 제지하며 만세를 부른다. 왕윤은 선평문 누각에서 뛰어내려 두 사람을 꾸짖다가 누각 아래에서 죽임을 당한다. 연의에서 왕기의 이름이 나오는 곳은 이 한 곳뿐이다. 연의 제9회 §48 · 50–51

3KDEX 집필(검수 전) — 문단 끝의 표지는 근거가 된 정사 권 · 연의 회의 그 절로 이어진다.

능력치

진수 『삼국지』 본문에 기록이 없어 연의 점수만 있습니다.

통솔무력지력정치매력덕처세문예언변용인
연의
  • 통솔42
  • 무력42
  • 지력38
  • 정치38
  • 매력38
  • 덕58
  • 처세38
  • 문예38
  • 언변36
  • 용인36
항목마다 100점

항목별 근거

  • 통솔연42추정

    연직접 기록 없음 — 월기교위 직함으로 추정제9회 §48

  • 무력연42추정

    연직접 기록 없음 — 월기교위 직함으로 추정제9회 §48

  • 지력연38추정

    연직접 기록 없음 — 월기교위 직함으로 추정제9회 §48

  • 정치연38추정

    연직접 기록 없음 — 월기교위 직함으로 추정제9회 §48

  • 매력연38추정

    연직접 기록 없음 — 월기교위 직함으로 추정제9회 §48

  • 덕연58

    연이각·곽사의 난에 나라의 난리로 죽은 신하로 기록제9회 §48

  • 처세연38추정

    연직접 기록 없음 — 월기교위 직함으로 추정제9회 §48

  • 문예·학술연38추정

    연직접 기록 없음 — 월기교위 직함으로 추정제9회 §48

  • 언변·외교연36추정

    연직접 기록 없음 — 월기교위 직함으로 추정제9회 §48

  • 안목·용인연36추정

    연직접 기록 없음 — 월기교위 직함으로 추정제9회 §48

연의 추정 직접 기록이 없어 행적으로 매긴 값(근거 등급 C)

3KDEX 채점 — 정사는 진수 『삼국지』 본문, 연의는 『삼국지연의』 120회 본문이 근거다. 근거 표지를 누르면 원문 리딩의 그 절로 간다.

연의 등장 회차 (1회)

등장미등장 회차 목록 →

소속 이력

  1. 후한 · 정사 · 위지 권6 동탁전 s21 배송지 주 「傕、汜入長安城…殺太僕魯馗、大鴻臚周奐、城門校尉崔烈、越騎校尉王頎」 · 연의 9회 s48 「越騎校尉王頎皆死於國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