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포 閻圃

정사연의 Yan Pu阎圃

프로필
직업정모사 · 공조 연모사소속
등장정연수록
출생출신지파서군
사망 원인정병사 추정
존재실존언급정6회

인물 소개

염포는 파서 사람으로, 한중을 차지한 장로의 공조였다. 정사에는 따로 전이 없고 위지 권8 이공손도사장전의 장로 기록에 나온다. 장로의 아랫사람들이 그를 한녕왕으로 높이려 하자 왕을 일컫지 말라고 간했고, 건안 20년(215) 태조가 양평관을 깨뜨리자 곧바로 항복하지 말고 파중으로 가 있다가 뒤에 몸을 맡기라고 권했다. 장로가 항복한 뒤 장로의 다섯 아들과 함께 열후에 봉해졌다. 정사 위지 권8 §64–68

진수 본문은 그의 자와 죽은 해를 적지 않았고, 권8의 평에도 그의 이름은 없다. 연의에는 제59회에 장로의 의논 자리에서 처음 나와 120회 가운데 4회에 등장하며, 이름이 회목에 든 회는 없다. 왕을 일컫기 전에 먼저 서천을 차지하라고 권하고, 유장을 돕지 말라고 간하며, 방덕을 천거하는 등 장로 곁에서 거듭 말한다. 정사 위지 권8 §64–68 · 71연의 제59회 §49연의 제64회 §50연의 제67회 §14

정사 기록

장로는 한중을 차지하고 귀도로 백성을 가르쳤다. 한나라 말 조정은 힘으로 그를 정벌할 수 없게 되자 그대로 장로를 총애해 진민중랑장으로 삼고 한녕태수를 겸하게 했고, 장로는 공물을 바치는 것으로 그쳤다. 백성 가운데 땅속에서 옥 도장을 얻은 자가 있자, 아랫사람들이 장로를 한녕왕으로 높이려 했다. 정사 위지 권8 §62 · 64

장로의 공조인 파서 사람 염포가 장로에게 간했다. '한천의 백성은 호수가 10만을 넘고, 재물이 풍부하고 땅이 기름지며 사방이 험준하고 견고합니다. 위로 천자를 바로잡으면 환공·문공처럼 될 것이고, 그다음으로 두융과 같이 되어도 부귀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황제의 명을 받든다는 명목으로 관직을 두고 임명하여 그 권세가 스스로 결단하기에 충분하니, 왕이라 칭하는 번거로움은 필요 없습니다. 원컨대 잠시 일컫지 마시고, 화를 앞장서 부르지 마십시오.' 장로는 그 말을 따랐다. 정사 위지 권8 §64–65

건안 20년(215) 태조가 산관에서 무도로 나와 장로를 치러 양평관에 이르렀다. 장로는 한중을 들어 항복하려 했으나 아우 장위가 따르지 않고 무리 수만 명을 거느리고 관을 막아 굳게 지켰고, 태조가 이를 쳐부수었다. 장로가 양평관이 이미 함락되었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조아려 귀순하려 하자, 염포가 또 말했다. '지금 궁지에 몰려 가시면 공은 반드시 가벼울 것입니다. 두호에게 의지하여 박호에게 가서 맞서다가 그런 뒤에 몸을 맡기시면 공이 반드시 클 것입니다.' 정사 위지 권8 §66–67

이에 장로는 남산으로 달아나 파중으로 들어갔다. 측근들이 보물과 재화, 창고를 모두 불태우려 하자, 장로는 본래 나라에 귀순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을 뿐이고 지금 달아나는 것은 날카로운 칼끝을 피하려는 것이라며, 보물과 창고는 나라의 것이라 하고 봉하여 간직해 두고 떠났다. 태조는 남정에 들어가 이를 크게 칭찬하고, 사람을 보내 장로를 위로하고 타일렀다. 정사 위지 권8 §67–68

무제기에 따르면 그해 9월 파의 칠성이왕 박호와 종읍후 두호가 파의 이민족과 종족 백성을 이끌고 와서 귀부했고, 11월 장로가 파중에서 남은 무리를 거느리고 항복했다. 태조는 장로를 맞이해 진남장군에 임명하고 낭중후에 봉했으며, 장로의 다섯 아들과 염포 등을 모두 열후에 봉했다. 정사 위지 권1 §150 · 152정사 위지 권8 §68

진수 본문은 염포의 자와 죽은 해를 적지 않았다. 권8의 평은 장연·장수·장로가 도적 떼를 버리고 공신의 반열에 들어 위태로움과 멸망을 벗어나 종묘의 제사를 보전했다고 할 뿐, 염포를 따로 논하지 않는다. 정사 위지 권8 §64–68 · 71

연의 묘사

연의 제59회에서 장로는 조조가 서량의 무리를 깨뜨려 위세를 떨친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한녕왕을 일컫고 군사를 거느려 조조를 막으려 한다며 무리에게 의견을 묻는다. 염포는 한천의 백성이 10만여 호이고 재물과 양식이 넉넉하며 사방이 험하고 견고한 데다, 마초가 막 패해 서량의 백성 수만이 자오곡을 따라 한중으로 들어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익주의 유장이 어리석고 나약하니 먼저 서천의 41주를 차지해 근본으로 삼은 뒤에 왕을 일컬어도 늦지 않다고 권한다. 장로는 크게 기뻐하며 아우 장위와 군사를 일으킬 일을 의논한다. 연의 제59회 §48–49

제64회에서 유장이 보낸 황권이 20개 주로 사례하겠다며 구원을 청하자, 장로는 그 이익이 기뻐 따르려 한다. 파서 사람 염포는 유장이 주공과 대대로 원수인데 지금 일이 급해 구원을 청하며 거짓으로 땅을 떼어 주겠다는 것이니 따라서는 안 된다고 간한다. 제65회 첫머리에서 염포가 막 장로에게 유장을 돕지 말라고 권하고 있을 때, 마초가 나서서 가맹관을 쳐 유비를 사로잡겠다고 청하고, 장로는 마초에게 군사 2만을 준다. 연의 제64회 §49–50연의 제65회 §1

제67회에서 조조가 남정에 이르러 영채를 세우자, 장로는 당황해 문무 관원을 모은다. 염포는 남안의 방덕이 전에 마초를 따라 귀순했다가 마초가 서천으로 갈 때 병으로 누워 가지 못했고 지금 주공의 은혜로 보살핌을 받고 있다며, 그를 내보내 조조의 장수들을 당해 내게 하자고 천거한다. 연의 제67회 §14

조조가 보낸 금갑과 밀서를 받은 양송이 방덕이 조조의 뇌물을 받고 싸움을 팔아넘겼다고 장로에게 말하자, 장로는 방덕을 불러 꾸짖고 베려 한다. 염포가 간곡히 말리니, 장로는 이튿날 나가 싸워 이기지 못하면 반드시 베겠다고 한다. 방덕은 이튿날 싸움에서 함정에 빠져 사로잡히고 조조에게 항복한다. 연의 제67회 §21–23

장로가 파중으로 물러난 뒤 아우 장위가 허저에게 베이자, 양송은 자기가 성을 지킬 테니 장로가 몸소 나가 결전을 벌이라고 한다. 염포는 장로에게 나가지 말라고 간하지만 장로는 듣지 않고 나갔다가, 후군이 먼저 달아나고 양송이 성문을 열어 주지 않아 말에서 내려 조조에게 항복한다. 조조는 장로를 진남장군에 봉하고, 염포 등도 모두 열후에 봉한다. 연의 제67회 §26–28

연의와 다른 점

왕을 일컫자는 의논: 연의 제59회에서는 장로가 조조가 서량을 깨뜨렸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한녕왕을 일컫고 조조를 막겠다고 한다. 정사에서는 백성 가운데 땅속에서 옥 도장을 얻은 자가 있자 아랫사람들이 장로를 한녕왕으로 높이려 했다. 연의 제59회 §48정사 위지 권8 §64

염포의 권고: 연의 제59회에서 염포는 먼저 서천의 41주를 차지해 근본으로 삼은 뒤에 왕을 일컬어도 늦지 않다고 권하고, 장로는 이에 군사를 일으킬 일을 의논한다. 정사에서 염포는 왕을 일컫지 말고 화를 앞장서 부르지 말라고 간했고, 장로는 그 말을 따랐다. 서천을 치자는 말은 없다. 연의 제59회 §49정사 위지 권8 §64–65

관서의 백성: 연의 제59회에서는 서량 백성 수만이 자오곡을 따라 한중으로 들어왔다는 말이 염포의 말 속에 들어 있다. 정사에서는 염포의 간언이 끝나고 장로가 그 말을 따른 뒤, 진수가 한수와 마초의 난 때 관서의 백성 수만 가구가 자오곡을 거쳐 장로에게 달아나 왔다고 따로 적는다. 연의 제59회 §49정사 위지 권8 §65

파중으로 간 계책: 연의 제67회에서 창고를 불태우고 남산으로 달아나 파중을 지키자고 한 사람은 장위이고, 양송은 성문을 열고 항복하자고 한다. 정사에서는 양평관이 함락된 뒤 곧바로 귀순하려는 장로에게, 두호에게 의지해 박호에게 가서 맞서다가 뒤에 몸을 맡기라고 권한 사람이 염포다. 창고를 모두 불태우려 한 것은 장로의 측근들이다. 연의 제67회 §24정사 위지 권8 §67

장로의 항복: 연의 제67회에서 염포는 장로에게 나가 싸우지 말라고 간하지만, 장로는 양송의 말대로 나갔다가 성문이 닫혀 조조에게 항복한다. 정사에서 장로는 건안 20년(215) 11월 파중에서 남은 무리를 거느리고 항복했고, 장로 기록에는 양송이 나오지 않는다. 연의 제67회 §27정사 위지 권1 §152정사 위지 권8 §60–69

유장 구원과 방덕 천거: 연의 제64회와 제67회에서 염포는 유장을 돕지 말라고 간하고, 방덕을 천거하며, 방덕을 베려는 장로를 말린다. 정사 장로 기록에는 이 일들이 없다. 연의 제64회 §50연의 제67회 §14 · 22정사 위지 권8 §60–69

3KDEX 집필(검수 전) — 문단 끝의 표지는 근거가 된 정사 권 · 연의 회의 그 절로 이어진다.

능력치

정사(진수 『삼국지』 본문)의 점수가 기준입니다. 연의가 같은 인물을 어떻게 다시 그렸는지 항목마다 견주고, 두 원전의 근거로 차이를 설명합니다.

통솔무력지력정치매력덕처세문예언변용인
정사(실선) 대 연의(점선)
  • 통솔3131±0
  • 무력3131±0
  • 지력6860−8
  • 정치4540−5
  • 매력4040±0
  • 덕4855+7
  • 처세7052−18
  • 문예4035−5
  • 언변6245−17
  • 용인4065+25
정사 · 연의 점수와 차이 (연의 − 정사 · 왼쪽 = 연의가 깎음 · 오른쪽 = 연의가 높임)

연의가 만든 능력치 — 정사와 다른 곳 차이 10점 이상

안목·용인정40추정연65 +25

정직접 기록 없음 — 행적으로 추정위지 권8 §68

연조조 장수를 당할 인물로 방덕을 천거제67회 §14

비슷한 곳 7개 — 근거 보기
  • 통솔정31추정연31추정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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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직접 기록 없음 — 모사로 추정제59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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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칭왕이 화를 부른다 보고, 항복 시기를 늦춰 공을 키우게 함위지 권8 §64위지 권8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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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정45추정연40추정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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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직접 기록 없음 — 행적으로 추정제59회 §49

  • 매력정40추정연40추정 ±0

    정직접 기록 없음 — 행적으로 추정위지 권8 §68

    연직접 기록 없음 — 행적으로 추정제67회 §28

  • 덕정48추정연55 +7

    정직접 기록 없음 — 칭왕 만류로 추정위지 권8 §65

    연방덕을 베려는 장로를 간곡히 말림제67회 §22

  • 문예·학술정40추정연35추정 −5

    정직접 기록 없음 — 공조로 추정위지 권8 §64

    연직접 기록 없음 — 행적으로 추정제59회 §49

정사 연의 추정 직접 기록이 없어 행적으로 매긴 값(근거 등급 C)

3KDEX 채점 — 정사는 진수 『삼국지』 본문, 연의는 『삼국지연의』 120회 본문이 근거다. 근거 표지를 누르면 원문 리딩의 그 절로 간다.

연의 등장 회차 (4회)

등장미등장 회차 목록 →

소속 이력

  1. 장로 세력 (~215) · 정사 · 정사 위지 권8 「魯功曹巴西閻圃諫魯」(sgz-wei-08:s64) · 3KDEX 대조(보고 187)

관련 사건 (1)

위키백과 정보상자·원문 핵심어 자동 대조(추정)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