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접 기록 없음 — 제갈탄을 벤 부대의 장수로 추정위지 권28 §42
연조교에서 맞닥뜨린 제갈탄을 한칼에 베어 떨어뜨림제112회 §15
호분은 위나라와 진나라의 장수다. 정사에는 따로 전이 없고, 진수 본문에는 세 곳에 이름이 나온다. 강유가 적도를 포위했을 때 등애·왕비와 함께 진태의 군에 이르렀고, 감로 3년(258) 제갈탄의 반란을 평정할 때에는 대장군 사마로 있으면서 그의 부대가 작은 성문으로 뚫고 나온 제갈탄을 맞아 쳐서 베었다. 정사 위지 권22 §44정사 위지 권28 §39 · 42
천기 3년(279) 겨울 진이 오를 칠 때에는 평남장군으로 하구로 향했다. 진수 본문은 그의 자와 출신, 생몰을 적지 않는다. 정사 오지 권3 §74 · 78
따로 전이 없으므로 진수의 평도 그를 논하지 않는다. 연의에는 제112회에서 수춘성을 빠져나가던 제갈탄을 조교 가에서 베는 장수로 처음 나와 120회 가운데 2회에 등장하며, 이름이 회목에 든 회는 없다. 제120회에서는 평남장군으로 하구로 나아가고, 두예가 연 회의에서 건업 공격을 이듬해 봄으로 미루자고 한다. 연의 제112회 §15연의 제120회 §33 · 42–43
정원 2년(255) 8월 신해일, 촉의 대장군 강유가 적도를 침범하자 옹주자사 왕경이 조서에서 맞아 싸웠으나 크게 패하여 돌아가 적도성을 지켰다. 위지 권22의 진태 기록에 따르면, 강유가 승세를 타고 적도를 포위하자 정서장군 진태는 상규에 주둔하여 병력을 나누어 요충지를 지키게 하고 밤낮으로 전진했다. 등애·호분·왕비도 도착하자, 진태는 곧 등애·왕비 등과 함께 세 군으로 나누어 농서로 진군했다. 정사 위지 권4 §54 · 57정사 위지 권22 §42 · 44
등애 등은 강유의 군대는 피해야 할 칼날이니 험한 곳을 나누어 지키며 틈을 엿보자고 했으나, 진태는 강유가 성 아래에서 꺾여 있고 군량이 이어지지 않으니 지금이 빨리 나아가 깨뜨릴 때라고 했다. 진태는 고성령을 넘어 몰래 나아가 밤에 적도 동남쪽 높은 산에 이르러 봉화를 많이 올리고 북과 뿔피리를 울렸다. 진태가 남쪽 길로 가는 척하자 강유는 사흘 동안 매복했고, 진태의 군은 몰래 나아가 그 남쪽으로 나왔다. 산을 따라 달려든 강유와 싸워 물러나게 한 뒤, 진태가 왕경과 은밀히 약속하여 강유의 돌아갈 길로 함께 향하려 하자 강유 등은 이를 듣고 달아났고, 성 안의 장병이 나올 수 있었다. 진수 본문은 이 싸움에서 호분이 한 일을 따로 적지 않는다. 정사 위지 권22 §44–50
위지 권28의 제갈탄 기록에 따르면, 감로 2년(257) 5월 제갈탄이 반란하여 성을 닫고 스스로 지키자, 6월 대장군 사마소가 안팎의 군사 26만을 거느리고 토벌하여 사방을 겹겹이 에워쌌다. 감로 3년(258) 정월 제갈탄 등은 포위를 깨고 나가려 했으나 실패했고, 제갈탄이 문흠을 죽이자 문흠의 아들 문앙과 문호가 성을 넘어 나와 대장군에게 귀순했다. 대장군은 이들을 사면하고 기병을 이끌고 성 둘레를 돌며 성 안에 외치게 했다. 정사 위지 권28 §34–35 · 37 · 39–41
대장군이 몸소 포위망에 나아가 사방에서 군을 진격시키고,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성에 오르니 성 안에서 감히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다급해진 제갈탄은 홀로 말을 타고 휘하를 이끌고 작은 성문으로 뚫고 나왔는데, 대장군 사마 호분의 부대가 맞아 쳐서 제갈탄을 베고 그 머리를 도성으로 보냈으며, 삼족을 멸했다. 정사 위지 권28 §41–42
오지 권3 삼사주전에 따르면, 천기 3년(279) 겨울 진은 진동대장군 사마주에게 도중으로, 안동장군 왕혼과 양주자사 주준에게 우저로, 건위장군 왕융에게 무창으로, 평남장군 호분에게 하구로, 진남장군 두예에게 강릉으로 향하게 하고, 용양장군 왕준과 광무장군 당빈에게는 강을 타고 동쪽으로 내려오게 했으며, 태위 가충을 대도독으로 삼았다. 이듬해(280) 3월 손호가 항복했다. 진수 본문은 하구로 향한 뒤 호분이 한 일을 적지 않는다. 정사 오지 권3 §74 · 78 · 81–84
연의 제112회에서 수춘성 안 사람들은 사마씨의 원수인 문앙도 중용되었으니 우리야 말할 것도 없다며 모두 항복하려 한다. 종회가 이때를 타서 성을 치자고 하자 사마소는 삼군을 일제히 공격하게 하고, 성을 지키던 장수 증선이 북문을 바쳐 위나라 군사를 들인다. 제갈탄은 휘하 수백 명을 이끌고 성 안의 샛길로 뚫고 나가다가 조교 가에서 호분과 맞닥뜨리고, 호분의 칼에 말 아래로 베여 떨어진다. 수백 명은 모두 사로잡혀 묶인다. 연의 제112회 §14–15
제120회에서 진주는 진남대장군 두예를 대도독으로 삼아 군사 10만으로 강릉으로 나아가게 하고, 진동대장군 낭야왕 사마주는 도중으로, 안동대장군 왕혼은 횡강으로, 건위장군 왕융은 무창으로, 평남장군 호분은 하구로 나아가게 한다. 각각 군사 5만을 이끌되 모두 두예의 지휘를 따르게 한다. 연의 제120회 §33
두예의 군위가 크게 떨쳐 무창까지 항복을 받자, 두예는 장수들을 모아 건업을 취할 계책을 의논한다. 호분은 백 년 묵은 도적을 다 굴복시킬 수는 없고 지금은 봄물이 불어나 오래 머물기 어려우니, 내년 봄을 기다려 다시 크게 거사하자고 한다. 두예는 옛날 악의가 제서에서 한 번 싸워 강한 제나라를 아울렀다며, 지금 군세가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와 같다고 하고 격문을 보내 장수들과 일제히 건업으로 나아간다. 연의 제120회 §42–43
적도 구원: 연의 제110~111회에서 적도를 구하러 오는 것은 진태와 등애의 두 갈래 군사이고, 호분은 나오지 않는다. 정사 진태 기록은 등애·호분·왕비가 함께 도착해 세 군으로 나누어 농서로 나아갔다고 적는다. 연의 제110회 §41연의 제111회 §1정사 위지 권22 §44
수춘성이 무너진 경위: 연의 제112회에서는 성을 지키던 장수 증선이 북문을 바쳐 위나라 군사가 들어온다. 정사 제갈탄 기록에서는 대장군이 몸소 포위망에 나아가 사방에서 진격하여 성에 오르자 성 안에서 움직이는 자가 없었고, 증선은 나오지 않는다. 연의 제112회 §15정사 위지 권28 §41–42
제갈탄을 벤 사람: 연의 제112회에서는 호분이 조교 가에서 몸소 칼을 휘둘러 제갈탄을 벤다. 정사에서는 제갈탄이 작은 성문으로 뚫고 나오자 대장군 사마 호분의 부대가 맞아 쳐서 베었다고 적는다. 연의 제112회 §15정사 위지 권28 §42
관직: 연의 제112회는 호분의 관직을 밝히지 않는다. 정사는 수춘 싸움 때 그를 대장군 사마라 부른다. 하구로 향할 때의 평남장군은 연의 제120회와 정사 삼사주전이 같다. 연의 제112회 §15연의 제120회 §33정사 위지 권28 §42정사 오지 권3 §78
하구로 간 군세: 연의 제120회에서는 장수마다 군사 5만을 이끌고 모두 대도독 두예의 지휘를 따른다. 정사 삼사주전에서는 태위 가충을 대도독으로 삼았고, 두예는 진남장군으로 강릉으로 향한 장수의 하나이며, 군사 수는 적혀 있지 않다. 연의 제120회 §33정사 오지 권3 §78
건업 공격을 미루자는 말: 연의 제120회에서 호분은 봄물이 불어나니 내년 봄을 기다리자고 하고, 두예가 이를 물리친다. 진수 본문에는 이 회의와 호분의 말이 없다. 연의 제120회 §42–43정사 오지 권3 §78–84
3KDEX 집필(검수 전) — 문단 끝의 표지는 근거가 된 정사 권 · 연의 회의 그 절로 이어진다.
정사(진수 『삼국지』 본문)의 점수가 기준입니다. 연의가 같은 인물을 어떻게 다시 그렸는지 항목마다 견주고, 두 원전의 근거로 차이를 설명합니다.
정직접 기록 없음 — 제갈탄을 벤 부대의 장수로 추정위지 권28 §42
연조교에서 맞닥뜨린 제갈탄을 한칼에 베어 떨어뜨림제112회 §15
정적도 구원에 참여하고 제갈탄을 베었으며 하구로 진군위지 권22 §44위지 권28 §42오지 권3 §78
정직접 기록 없음 — 장수 역할로 추정위지 권22 §44
정직접 기록 없음 — 장수 역할로 추정위지 권28 §42
연직접 기록 없음 — 장수 역할로 추정제112회 §15
정사 연의 추정 직접 기록이 없어 행적으로 매긴 값(근거 등급 C)
3KDEX 채점 — 정사는 진수 『삼국지』 본문, 연의는 『삼국지연의』 120회 본문이 근거다. 근거 표지를 누르면 원문 리딩의 그 절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