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공 公孫恭

정사연의 Gongsun Gong公孙恭

프로필
직업정연군주 · 요동태수소속
등장정연수록
출생출신지요동군 양평현 추정
존재실존언급정6회

인물 소개

공손공은 요동태수 공손도의 아들이자 공손강의 아우다. 건안 9년(204) 공손도가 죽고 공손강이 자리를 잇자 영녕향후에 봉해졌고, 공손강이 죽었을 때 그 아들들이 모두 어렸으므로 무리가 그를 세워 요동태수로 삼았다. 정사에는 따로 전이 없고, 위지 권8 이공손도사장전의 공손도 · 공손연 기록과 권2 문제기 · 권3 명제기, 권11의 관녕(管寧) 기록에 나온다. 정사 위지 권8 §40–41정사 위지 권2 §26정사 위지 권3 §10정사 위지 권11 §80

문제가 즉위하자 거기장군 · 가절에 임명되고 평곽후에 봉해졌다. 그러나 병으로 음부가 위축되어 고자가 되었고 나약하여 나라를 다스릴 수 없었으며, 태화 2년(228) 형의 아들 공손연에게 위협당해 자리를 빼앗겼다. 진수 본문은 그 뒤의 행적과 죽음을 적지 않았고, 권8의 평에도 그는 나오지 않는다. 정사 위지 권8 §41 · 43 · 71정사 위지 권3 §10

연의에는 제33회에 처음 나와 120회 가운데 2회에 등장하며, 이름이 회목에 든 회는 없다. 제33회에서 원희 · 원상이 의탁해 오자 그들을 꾀어 죽이고 머리를 조조에게 바치자고 공손강에게 권하고, 제106회에서는 공손강의 아우로서 직위를 이었다가 조카 공손연에게 자리를 빼앗긴다. 연의 제33회 §42–43연의 제106회 §1–2

정사 기록

공손공의 아버지 공손도는 자가 승제이고 본래 요동 양평 사람이다. 같은 군 사람으로 동탁의 중랑장이 된 서영의 천거로 요동태수가 되었고, 초평 원년(190) 중원이 어지러운 것을 알고 가까운 관리들에게 함께 왕업을 도모하자고 했다. 그 뒤 요동군을 나누어 요서군과 중요군을 만들고 스스로 요동후 · 평주목이 되었다. 태조가 표를 올려 공손도를 무위장군으로 삼고 영녕향후에 봉하자, 공손도는 '나는 요동의 왕인데 영녕은 무슨 영녕이냐'며 인수를 무기고에 넣어 두었다. 정사 위지 권8 §36–40

공손도가 죽자 아들 공손강이 자리를 이었고, 영녕향후는 공손강의 아우 공손공에게 봉해졌다. 진수는 이해가 건안 9년(204)이라고 적었다. 건안 12년(207) 태조가 오환을 정벌하자 원상 등이 요동으로 달아났고, 공손강은 원상의 목을 베어 보내 양평후에 봉해지고 좌장군에 임명되었다. 정사 위지 권8 §40–41

공손강이 죽었을 때 아들 공손황 · 공손연 등이 모두 어렸으므로, 무리가 공손공을 세워 요동태수로 삼았다. 문제가 즉위하자 사자를 보내 그 자리에서 공손공을 거기장군 · 가절로 임명하고 평곽후에 봉했으며, 공손강에게는 대사마를 추증했다. 문제기는 황초 2년(221) 3월에 요동태수 공손공에게 거기장군을 더했다고 적는다. 정사 위지 권8 §41정사 위지 권2 §21 · 26

천하가 크게 어지러울 때 관녕(管寧)은 공손도의 명령이 바다 밖까지 행해진다는 말을 듣고 요동으로 와 있었다. 문제가 즉위한 뒤 관녕을 부르자 관녕은 가솔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고향 군으로 돌아갔는데, 공손공은 남쪽 교외까지 전송하며 옷과 물건을 더 선사했다. 관녕은 동쪽으로 간 뒤로 공손도 · 공손강 · 공손공이 앞뒤로 보내 준 물건을 모두 받아 간직해 두었다가, 서쪽으로 건너오자 모두 봉하여 돌려보냈다. 정사 위지 권11 §76 · 80

이전에 공손공은 병으로 음부가 위축되어 고자가 되었고, 나약하여 나라를 다스릴 수 없었다. 태화 2년(228) 공손연이 공손공을 위협하여 자리를 빼앗자, 명제는 곧바로 공손연을 양렬장군 · 요동태수로 임명했다. 명제기도 요동태수 공손공의 형의 아들 공손연이 공손공의 자리를 빼앗자 공손연에게 요동태수를 겸하게 했다고 적는다. 정사 위지 권8 §43정사 위지 권3 §7 · 10

공손연은 경초 원년(237) 스스로 연왕이 되었고, 이듬해 태위 사마선왕(사마의)의 정벌을 받아 8월 아들 공손수와 함께 목이 베였다. 진수는 공손도가 중평 6년(189)에 요동을 차지한 뒤로 공손연에 이르기까지 3대, 모두 50년 만에 멸망했다고 적었다. 진수 본문은 자리를 빼앗긴 뒤 공손공이 어떻게 되었는지, 언제 죽었는지를 적지 않았다. 정사 위지 권8 §46–47 · 49–50 · 43

진수는 권8의 평에서 공손도는 잔혹하고 포악하여 절제가 없었고, 공손연은 그 업을 이어 흉악함을 더해 제 일족을 뒤엎었을 뿐이라고 했다. 평에 공손공은 나오지 않는다. 정사 위지 권8 §71

연의 묘사

연의 제33회에서 원희와 원상이 수천 기를 이끌고 요동으로 달아나 오자, 요동태수 공손강은 본부의 속관들을 모아 이 일을 의논한다. 이 자리에서 공손공은 원소가 살아 있을 때 늘 요동을 삼키려는 마음을 품었고, 이제 군사는 패하고 장수는 죽어 몸 붙일 곳이 없는 두 사람이 의탁해 오는 것은 비둘기가 까치 둥지를 빼앗으려는 뜻이라고 말한다. 받아들이면 뒤에 반드시 우리를 도모할 것이니, 성안으로 꾀어 들여 죽이고 그 머리를 조공께 바치면 조공이 반드시 우리를 중히 대접할 것이라고 한다. 연의 제33회 §42–43

공손강이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요동으로 내려올까 두려우니 차라리 두 원씨를 받아들여 돕게 하는 편이 낫겠다고 하자, 공손공은 사람을 보내 알아보게 하여 조조의 군사가 쳐들어오면 두 원씨를 머물게 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두 원씨를 죽여 조공께 보내자고 한다. 공손강은 그 말을 따르고, 조조의 군사가 역주에 주둔해 요동으로 내려올 뜻이 없다는 보고를 받자 도부수를 숨겨 두었다가 두 사람의 머리를 베어 조조에게 보낸다. 조조는 공손강을 양평후 · 좌장군으로 봉하고, 이 일이 곽가가 죽기 전에 남긴 글의 헤아림대로였음을 여러 관원에게 보여 준다. 연의 제33회 §43–47

제106회는 공손연의 내력을 말하며, 공손강이 죽었을 때 두 아들 황과 연이 모두 어렸으므로 공손강의 아우 공손공이 직위를 이었고, 조비 때에 공손공을 거기장군 · 양평후로 봉했다고 적는다. 태화 2년(228) 장성하여 문무를 겸비하고 성품이 굳세고 싸우기를 좋아한 공손연이 숙부 공손공의 자리를 빼앗자, 조예는 공손연을 양렬장군 · 요동태수로 봉한다. 연의에서 공손공이 나오는 곳은 이 두 회뿐이다. 연의 제106회 §1–2

연의와 다른 점

원씨 형제의 처리: 연의 제33회에서는 공손공이 두 원씨를 꾀어 죽이자고 하고, 조조의 움직임을 알아본 뒤 처리하자는 그의 말을 공손강이 따른다. 정사 무제기는 공손강이 원상 · 원희와 속복환 등의 목을 베어 보냈다고 하고, 권8의 공손도 기록도 공손강이 원상의 목을 베어 보냈다고만 적을 뿐, 공손공은 이 일에 나오지 않는다. 연의 제33회 §42–43정사 위지 권1 §101정사 위지 권8 §41

작위: 연의 제106회에서는 조비 때 공손공을 거기장군 · 양평후로 봉한다. 정사에서 공손공은 건안 9년(204) 영녕향후에 봉해졌고, 문제가 즉위하자 거기장군 · 가절에 임명되고 평곽후에 봉해졌다. 양평후는 정사에서 공손강이 받은 작위다. 연의 제106회 §1정사 위지 권8 §40–41

자리를 이은 경위: 연의 제106회는 공손강의 아들들이 어려 아우 공손공이 직위를 이었다고만 한다. 정사에서는 공손강의 아들들이 모두 어렸으므로 무리가 공손공을 세워 요동태수로 삼았다. 연의 제106회 §1정사 위지 권8 §41

자리를 빼앗긴 까닭: 연의 제106회는 장성한 공손연이 문무를 겸비하고 성품이 굳세고 싸우기를 좋아하여 숙부의 자리를 빼앗았다고 한다. 정사에서는 공손공이 병으로 고자가 되었고 나약하여 나라를 다스릴 수 없었는데, 공손연이 그를 위협하여 자리를 빼앗았다고 적는다. 연의 제106회 §2정사 위지 권8 §43

관녕의 귀향: 연의 제66회는 관녕(管寧)이 요동으로 피해 가 살며 평생 위나라에 벼슬하려 하지 않았다고만 하고, 공손공은 나오지 않는다. 정사에서는 문제가 부르자 관녕이 바다를 건너 고향 군으로 돌아갔고, 공손공이 남쪽 교외까지 전송하며 옷과 물건을 더 선사했다. 연의 제66회 §44정사 위지 권11 §80

3KDEX 집필(검수 전) — 문단 끝의 표지는 근거가 된 정사 권 · 연의 회의 그 절로 이어진다.

능력치

정사(진수 『삼국지』 본문)의 점수가 기준입니다. 연의가 같은 인물을 어떻게 다시 그렸는지 항목마다 견주고, 두 원전의 근거로 차이를 설명합니다.

통솔무력지력정치매력덕처세문예언변용인
정사(실선) 대 연의(점선)
  • 통솔4040±0
  • 무력3535±0
  • 지력4260+18
  • 정치4442−2
  • 매력4040±0
  • 덕5240−12
  • 처세3866+28
  • 문예4040±0
  • 언변4242±0
  • 용인3838±0
정사 · 연의 점수와 차이 (연의 − 정사 · 왼쪽 = 연의가 깎음 · 오른쪽 = 연의가 높임)

연의가 만든 능력치 — 정사와 다른 곳 차이 10점 이상

처세정38추정연66 +28

정직접 기록 없음 — 조카 공손연에게 자리를 빼앗긴 일로 추정위지 권3 §10

연조조군이 오면 원씨를 두고 아니면 베어 바치라는 진퇴를 제시함제33회 §43

지력정42추정연60 +18

정직접 기록 없음 — 요동태수 직으로 추정위지 권2 §26

연원희·원상이 요동을 삼키려 온 속셈을 간파함제33회 §42

덕정52연40추정 −12

정관녕을 남쪽 교외까지 전송하며 옷과 물건을 선사함위지 권11 §80

연직접 기록 없음 — 원씨를 베어 바치자고 한 일로 추정제33회 §43

비슷한 곳 7개 — 근거 보기
  • 통솔정40추정연40추정 ±0

    정직접 기록 없음 — 요동태수·거기장군 직으로 추정위지 권2 §26

    연직접 기록 없음 — 공손강의 아우로 요동을 이은 일로 추정제33회 §42

  • 무력정35추정연35추정 ±0

    정직접 기록 없음 — 요동태수로 추정위지 권2 §26

    연직접 기록 없음 — 요동 종실로 추정제33회 §42

  • 정치정44추정연42추정 −2

    정직접 기록 없음 — 요동태수 직으로 추정위지 권2 §26

    연직접 기록 없음 — 공손강의 뒤를 이은 일로 추정제106회 §1

  • 매력정40추정연40추정 ±0

    정직접 기록 없음 — 요동태수 직으로 추정위지 권2 §26

    연직접 기록 없음 — 공손강의 아우로 요동을 이은 일로 추정제33회 §42

  • 문예·학술정40추정연40추정 ±0

    정직접 기록 없음 — 요동태수 직으로 추정위지 권2 §26

    연직접 기록 없음 — 공손강의 아우로 요동을 이은 일로 추정제33회 §42

  • 언변·외교정42추정연42추정 ±0

    정직접 기록 없음 — 요동태수 직으로 추정위지 권2 §26

    연직접 기록 없음 — 공손강의 아우로 요동을 이은 일로 추정제33회 §42

  • 안목·용인정38추정연38추정 ±0

    정직접 기록 없음 — 요동태수 직으로 추정위지 권2 §26

    연직접 기록 없음 — 공손강의 아우로 요동을 이은 일로 추정제33회 §42

정사 연의 추정 직접 기록이 없어 행적으로 매긴 값(근거 등급 C)

3KDEX 채점 — 정사는 진수 『삼국지』 본문, 연의는 『삼국지연의』 120회 본문이 근거다. 근거 표지를 누르면 원문 리딩의 그 절로 간다.

연의 등장 회차 (2회)

등장미등장 회차 목록 →

소속 이력

  1. 공손도 세력 (~228) · 정사 · 정사 위지 권8 「眾立恭為遼東太守」(sgz-wei-08:s41) · 「淵脅奪恭位」(sgz-wei-08:s43) · 3KDEX 대조(보고 187)

관계

가족

형제자매공손강 연의

Wikidata 역사·연의 인물 항목 기준(정의서 16). 추정 배지가 없는 관계는 정사 원문에서도 확인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