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환에 응하지 않고 성에 웅거해 진에 항복함오지 권3 §64오지 권13 §70
연직접 기록 없음 — 오주가 서릉을 치게 한 대상으로 추정제120회 §12
보천은 오의 승상 보즐의 아들로, 보즐의 뒤를 이은 보협의 아우다. 정사에는 따로 전이 없고, 보즐의 전기 끝과 삼사주전, 육항의 전기에 나온다. 가업을 이어 서릉독이 되었고, 소무장군을 더해 받고 서정후에 봉해졌다. 정사 오지 권7 §87
봉황 원년(272) 요장독으로 부름을 받자, 스스로 직위를 잃는다고 여기고 참소의 화를 두려워해 서릉성을 근거로 진에 항복했다. 오의 육항이 서릉을 에워싸 진의 구원군을 물리치고 성을 함락했으며, 보천은 일족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 정사 오지 권7 §87–88정사 오지 권3 §64정사 오지 권13 §76
연의에는 제120회에서 진의 양호가 부장에게 하는 말 가운데, 오주의 명을 받은 육항이 서릉을 쳐서 빼앗고 보천과 그 장수와 군사 수십 명을 베었다는 대목에만 나온다. 120회 가운데 이 1회에 등장하며, 이름이 회목에 든 회는 없다. 연의 제120회 §12
보즐은 서릉에 20년 있었고, 적오 10년(247)에 죽었다. 아들 보협이 뒤를 이어 보즐이 거느리던 군사를 통솔하고 무군장군을 더해 받았으며, 보협이 죽자 그 아들 보기가 후작을 이었다. 보협의 아우 보천은 가업을 이어 서릉독이 되었고, 소무장군을 더해 받고 서정후에 봉해졌다. 정사 오지 권7 §86–87
감로 원년(265) 9월, 손호는 서릉독 보천의 표문을 따라 도읍을 무창으로 옮기고, 어사대부 정고와 우장군 제갈정에게 건업을 지키게 했다. 정사 오지 권3 §52 · 54
봉황 원년(272) 가을 8월, 보천은 요장독으로 부름을 받았다. 보천은 대대로 서릉에 있었는데 갑자기 부름을 받자, 스스로 직위를 잃는다고 여기고 또 참소의 화를 두려워하여, 부름에 응하지 않고 성을 근거로 진에 항복했다. 그리고 보기와 그 아우 보선을 낙양에 보내 인질로 삼게 했다. 정사 오지 권7 §87정사 오지 권3 §64
진은 보천을 도독서릉제군사·위장군·의동삼사로 삼고 시중을 더했으며, 가절을 주어 교주목을 겸하게 하고 의도공에 봉했다. 보기는 감강릉제군사·좌장군이 되어 산기상시를 더해 받고 여릉태수를 겸했으며 강릉후로 옮겨 봉해졌고, 보선은 급사중·선위장군이 되어 도향후에 봉해졌다. 진은 거기장군 양호와 형주자사 양조(楊肇)에게 가서 보천을 구원하게 했다. 정사 오지 권7 §87–88
오의 육항은 보천이 성을 차지하고 배반했다는 말을 듣고, 그날로 여러 군을 배치해 장군 좌혁·오언·채공 등을 곧장 서릉으로 달려가게 했다. 그리고 적계에서 고시까지 엄중한 포위망을 다시 쌓아 안으로는 보천을 에워싸고 밖으로는 적을 막게 했다. 장수들이 진의 구원군이 오기 전에 서둘러 보천을 치자고 하자, 육항은 이 성은 형세가 견고하고 양곡도 넉넉하며 손질해 둔 방어 도구가 모두 자신이 전에 계획한 것이어서 금방 이길 수 없다며 허락하지 않았다. 의도태수 뇌담이 간절히 청하자 한 번 공격하게 했으나, 과연 이득이 없었다. 정사 오지 권13 §70–72
양호가 군사를 이끌고 강릉으로 향하자, 육항은 강릉은 성이 견고하고 병력이 넉넉해 근심할 것이 없지만 서릉이 적과 굳게 얽히면 남산의 여러 이족이 모두 들고일어날 것이라며 서릉으로 갔다. 형주자사 양조가 서릉에 이르자 육항은 몸소 삼군을 이끌고 포위망에 기대어 맞섰고, 양조는 온 지 한 달이 지나자 계책이 다해 밤에 달아났다. 육항은 보천이 힘을 비축한 채 틈을 엿보고 있어 병력을 나누기에 부족할까 염려해, 북만 울려 추격하려는 것처럼 하고 날랜 병사에게 뒤를 밟게 했다. 양조는 크게 패했고, 양호 등도 모두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다. 정사 오지 권13 §72 · 74–75
육항은 마침내 서릉성을 함락하고, 보천의 일족과 그의 주요 장수·관리들을 주살했으며, 그 아래로는 육항이 사면을 청한 이가 수만 명이었다. 삼사주전은 보천의 무리가 모두 항복했고 보천과 함께 모의한 수십 명은 모두 삼족이 멸해졌다고 적는다. 보즐의 전기는 육항이 성을 함락하고 보천 등을 베니 보씨는 멸족되고 오직 보선만이 제사를 이었다고 적는다. 정사 오지 권13 §76정사 오지 권3 §64정사 오지 권7 §88
봉황 3년(274) 여름 병이 든 육항은 상소에서, 서릉은 나라의 서쪽 문이라고 했던 아버지 육손의 말을 들고, 자신이 거느린 병력이 보천의 일 이후로 더욱 줄어들었다고 했다. 정사 오지 권13 §84–85
연의 제120회에서 진의 사마염은 가충의 말에 따라 양양의 양호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오를 막게 한다. 오군이 느슨해졌으니 기습하자는 부장의 말에, 양호는 육항을 얕보느냐며 그는 지혜가 넉넉하고 꾀가 많다고 웃는다. 얼마 전 오주가 그에게 명해 서릉을 쳐서 빼앗게 하자 육항은 보천과 그 장수와 군사 수십 명을 베었는데, 자신은 구하러 가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연의에서 보천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이 대목뿐이다. 연의 제120회 §10–12
등장: 연의에서 보천은 제120회 양호의 말 속에 이름만 나온다. 정사에서는 보즐의 가업을 이어 서릉독이 되었고, 감로 원년(265)에는 그의 표문에 따라 오가 도읍을 무창으로 옮기기도 했다. 연의 제120회 §12정사 오지 권7 §87정사 오지 권3 §54
배반의 까닭: 연의에는 보천이 진에 항복한 일이 나오지 않고, 양호는 오주가 육항에게 서릉을 쳐서 빼앗게 했다고만 말한다. 정사에서 보천은 요장독으로 부름을 받자 직위를 잃는다고 여기고 참소의 화를 두려워해 서릉성을 근거로 진에 항복했다. 연의 제120회 §12정사 오지 권7 §87
진의 구원: 연의 제120회에서 양호는 자신이 구하러 가도 미치지 못했다고 말한다. 정사에서는 진이 양호와 양조(楊肇)에게 보천을 구원하게 했고, 양호는 강릉으로 향했다가 서릉에 이른 양조가 크게 패하자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다. 연의 제120회 §12정사 오지 권7 §88정사 오지 권13 §72 · 75
죽임을 당한 사람: 연의 제120회에서는 육항이 보천과 그 장수와 군사 수십 명을 베었다고 한다. 정사에서는 육항이 보천의 일족과 주요 장수·관리를 주살했고, 보천과 함께 모의한 수십 명은 삼족이 멸해졌으며, 그 아래로는 육항이 사면을 청한 이가 수만 명이었다. 연의 제120회 §12정사 오지 권13 §76정사 오지 권3 §64
3KDEX 집필(검수 전) — 문단 끝의 표지는 근거가 된 정사 권 · 연의 회의 그 절로 이어진다.
정사(진수 『삼국지』 본문)의 점수가 기준입니다. 연의가 같은 인물을 어떻게 다시 그렸는지 항목마다 견주고, 두 원전의 근거로 차이를 설명합니다.
정소환에 응하지 않고 성에 웅거해 진에 항복함오지 권3 §64오지 권13 §70
연직접 기록 없음 — 오주가 서릉을 치게 한 대상으로 추정제120회 §12
정견고한 서릉성에 웅거해 육항이 쉽게 공격하지 못함오지 권13 §71오지 권13 §76
연직접 기록 없음 — 서릉을 지킨 장수로 추정제120회 §12
정직접 기록 없음 — 추정오지 권13 §76
연직접 기록 없음 — 추정제120회 §12
정배반했으나 육항이 서릉성을 함락하고 그와 일족을 베어 죽임오지 권3 §64오지 권13 §76
연직접 기록 없음 — 추정제120회 §12
정직접 기록 없음 — 진에 사신을 보낸 일로 추정오지 권13 §70
연직접 기록 없음 — 추정제120회 §12
정사 연의 추정 직접 기록이 없어 행적으로 매긴 값(근거 등급 C)
3KDEX 채점 — 정사는 진수 『삼국지』 본문, 연의는 『삼국지연의』 120회 본문이 근거다. 근거 표지를 누르면 원문 리딩의 그 절로 간다.